5.17. 포정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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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았다.

그 손을 놀리고, 어깨를 받치고, 발로 딛고, 무릎을 굽히는 모양이나

또 쪼록쪼록 싹싹 하는 칼 쓰는 소리라든지가 모두 음률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 몸놀림은 상림의 춤과 어울리고, 그 칼 쓰는 소리는 경수의 장단과도 맞았다.

문혜군이 이를 보고 감탄했다.

'아, 참으로 훌륭하구나. 기술이 대체 이렇게까지 미칠 수 있는 것인가?'

포정은 칼을 놓고 말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도로서, 그것은 기술에 앞섭니다.

옛날 내가 처음으로 소를 잡기 시작할 때엔 눈에 보이는 것이 소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삼 년이 지난 뒤에는 소를 본 적이 통 없었고, 지금에는 오직 마음으로 일할 뿐

눈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곧 손발이나 눈 따위의 기관은 멈춰 버리고 마음만이 작용합니다.

소 몸뚱이 속의 자연스런 본래의 이치를 따릅니다.

뼈와 살이 붙어 있는 큰 틈바귀를 젖힐 때나, 뼈마디가 이어져 있는 큰 구멍에 칼을 넣는

일들은 모두 소가 생긴 그대로를 쫒아 하기 때문에 내 기술은 아직 한번도 뼈와 살이 맻힌

곳에서도 칼이 다치지 않도록 합니다.

하물며 큰 뻐다귀이겠습니까?

솜씨 있는 백정은 일년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살을 베기 때문이요,

보통 백정은 한 달에 한 번 칼을 바꾸는데 그것은 뼈다귀에 부딪혀 칼을 부러뜨리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 칼은 이제 십구년이나 지났고 잡은 소가 수천 마리에 이르는데도 그 칼날이 막 숫돌에 갈은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가 없는 것을 틈이 있는 곳에 집어넣기 때문에 넓고 넓어 칼을 놀리는 데에 충분한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십구년이나 지난 칼인데도 숫돌에서 막 나온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러나 뼈와 힘줄이 한데 얽혀 있는 곳을 만날 때마다, 나는 그것이 다루기 어려움을 알고

두려워하며 조심합니다.

눈길을 그곳에 멈추고, 몸놀림은 느려지고, 칼놀림은 아주 가만가만해집니다.

그러다가 뼈와 살이 철썩하고 그만 갈라지는데, 마치 흙덩이가 땅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나는 칼을 들고 일어서서 사방을 둘러보고 만족한 듯 머뭇거리면서,

흐믓한 마음으로 칼을 닦아 간직합니다.'

문혜군이 이말을 듣고 말했다.

'좋구나!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 생명을 기르는 도를 깨닫아 얻었다.'

포정 : 요리의 명인. 이름이 정. 직업으로 이름을 삼는 일이 옛날에는 있었다.

문혜군 : 양나라의 혜왕

상림의 춤 : 은나라의 탕왕이 춘 춤

경수의 장단 : 요임금 때 지어부른 노래의 하나


장자의 내편 제3편인 양생주에 나오는 포정의 이야기입니다.

수천 마리의 소를 잡은

포정의 칼이 상하지 않은 것처럼 산다는 것.......... 참...

달개비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