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2. 시골집
작년 장마에 대문과 사랑채가 붙은 담장이
무너져 버렸다.
길에서 바로 횅뎅그래한 마당 끝자락에
집이 덩그러니 있게되었다.
지은지 70년 된 집이라니
무너질만도 하다.
작은 시골동네라
번잡하지 않고 조용해서
그나마 담없이도 지낼만 하다.
여름이 되니
조금 난감하긴 하다.
불을 켜놓고 방문을 열어놓으면
길가에서 훤히 다 보인다.
그래도 더운데
문닫고 살수는 없고
하긴 여름도 금방 지나간다.
새삼 버릴것도 별로 없는
워낙 가난한 사람이라
그동안 살아왔던 도시에서의 생활을 접고
휴양차 이곳 시골로 이사온지
이제 3년되었다.
자연을 좋아한다는것과
자연속에서 사는 것은
참 많이 달랐다.
모기와 파리와 축사의 분뇨냄새
그토록 이뻐했던 풀들이
자고나면 부쩍부쩍 자라서
잠시동안이면
온 집안 빙둘러서
키만큼 올라온다. 그 풀 베는 일.
거기다 가스레인지 전선을 끊어놓는
쥐와의 전쟁. 개미들...
차츰 익숙해지고 배워가고
이젠 제법 촌사람 다 되었다.
그럼에도
그 낯설었던 날것의 불편함들을
불편한줄 모르게 하는
아름다운 순간순간들
새벽 미명에
이슬 잔뜩머금은 잎파리들
새들의 지저귐
이윽고 떠오르는 태양
햇살에 반짝이는 나무잎은
마치 은빛꽃같다.
뜨거운 낮 하루가 저물어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할때
마당에 심어놓은 옥수수 잎들
울타리 감나무 잎들
수런수런 거리는 밤을 맞이하는 소리
진한 풀향기 품은 바람
우주 저편 어느별에선가
또하나의 내가
아니 수많은 내가
나에게 손짓하는 것 같은...
지극한 평화와 편재
그리고 공명
시골집의 여름밤은
그렇게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