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 의식의 기본구조
삶과 죽음 즉 인생이라는 것을 - 때로는 이 과정을 우주적 진화라고도 부르는데 - 들여다볼 때
육체(생로병사), 의식(최초의 마음에서 궁극의 의식까지) 그리고 자아의
발달과 성장이라는 과정과 그 구조와 단계들이 곧 존재하는 각 현존이고 사건임을 알 수 있다.
워낙에 방대한 자료이고 고찰이라 이 지면상에서 언급하기에는 역부족이라
오늘은 간략화시킨 개괄적 큰 골조만 언급해본다.
의식의 기본구조의 각각의 의식 대역은 자아가 없는 상태에서의 의식수준의 특징이다.
자아는 동일시, 전유(기억의 연결성) - 자아정체성 확립 - 보존, 강화 - 탈동일시, 부정 - 포함, 상위 의식구조로의 초월 - 이라는 자아 특유의 성격과 자아-충동, 자아-안전, 자아-소속감, 자아-존중, 자아-실현, 자아-초월이라는 위계적 성장 욕구로서의 자아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자아의 성장 구조와 의식의 기본구조는 구별해야 한다.
그래서 차후에 이러한 의식의 기본구조와 자아체계와 상호직조될 때의 제반 과정과 현상에 대해서는 따로 글로 쓰자면 두꺼운 두편 정도의 책이 될터이니 카페에서는 그때 그때 부분적으로 당면한 사항에 따라 언급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것 같다.
일단 우리가 '마음'이라는 두리뭉실한 언어로 대충 부르고 있는 심리현상인 의식의 기본 구조부터 보자.
(피아제, 베르너, 아리에티 및 볼드윈 등의 학자들의 연구에 기초한 켄 윌버의 모형이다. 또 정묘와 시원의 영역은 오로빈도, 게농, 스미스, 프리 존, 켄 윌버등의 표현과 달개비식 경험과 표현이 섞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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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Physical : 유기체의 단순한 물질적 기층. 불교에서 말하는 첫번째 온(蘊) 색(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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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지각적-sensoriperceptual : 전형적인 감각운동적 인지. 불교에서 말하는 수(受)와 상(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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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적 성적-emotional-sexual : 생물 에너지, 리비도, 생기 또는 프라나의 집, 베단타의 프라나마야코샤, 불교에서 말하는 네번째 온(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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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Phantasmic 하위의 마음 또는 심상적 마음에 대하여 붙인 아리에티의 용어로 오직 심상만을 사용하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심적인 '상상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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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상적 마음-representational mind : 피아제의 전조작적 단계에 해당되는 마음으로 상징과 개념을 형성할 수 있으며, 따라서 사물뿐만 아니라 사물의 추상적인 종류를 표상할 수도 있지만 아직 그러한 표상에 대하여 조작하거나 조절할 수는 없다. 또 하나의 특징은 타인의 역할을 쉽게 취할 수 없다는 점이다. 표상적 마음은 아직도 '몸에 가까이'있기 때문에, 그 마음은 여전히 소박한 감각자료에 묶여 있다.
보는 것은 대체로 생각하는 것과 일치한다. 따라서 조망능력이 없으며 자기중심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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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칙/역할 마음-rule/role mind : 피아제의 구체적 조작적 단계에 해당된다. 선행자인 표상적 마음과는 달리 구체적 조작적 사고는 타인의 역할을 취할 수 있으며, 곱셈, 나눗셈 및 종류 포함시키기와 같은 규칙 조작을 분명하게 수행할 수 있다. 이 마음은 구체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조작할 수 있지만, 아직 사고 자체에 대해서는 조작할 수 없다. 이 마음은 가능한 관계나 가설적인 관계를 상상할 수 없다. 즉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따라서 이것은 사실이다'와 같은 진술을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마음은 상위의 관계 및 불분명한 관계를 파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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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적 반성적 마음-formal reflexive mind : 이 마음은 바깥세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내면의 사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최초의 구조이다. 따라서 이 마음은 자기반성적이며 내성적인 최초의 구조이다. 그래서 구체적인 사물뿐만 아니라 주관적인 사고에 대해서도 조작할 수 있으며, 따라서 이 마음은 불분명한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 최초의 구조이다. 무엇보다 이것은 이 마음이 상위의 관련성 또는 정신적 관계성을 이해하도록 해 주는 가설연역적 또는 논리적 추론을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창의성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무미건조한 추상성'과는 전혀 다르게, 이 마음은 사실상 진정으로 창조적이거나 상상력이 풍부한 최초의 인지구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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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 논리적-vision logic : 형식적 마음이 상위의 관련성과 창조적 관계성을 수립하는 곳에서 비전-논리는 그러한 관련성들간의 관계망을 형성한다. 즉 각각의 명제를 다른 많은 명제들과 나란히 놓을 수 있다는 점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한 명제의 진위가 다른 명제들의 진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를 알 수 있고 '통찰할' 수 있게 된다. 이 마음은 진실들을 결합시키고 관련지으며, 아이디어를 조정하고 개념을 통합시키는 실로 상위 통합능력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오르빈도는 이 마음을 '상위마음'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에 관하여 '단일한 관념으로 스스로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마음의 가장 특징적인 작용은 단 한 번 보고도 거대한 관념화, 진리의 전체성 또는 체계를 알아차리며, 통합된 전체 속에서 자신이 본 관념들간의 관계성, 진리의 관계성을 알아차리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 마음은 통합적인 구조로서, 개인적 영역에서는 가장 상위의 통합구조라고 켄 윌버는 말한다. 이 마음을 넘어서면 초개인적인 발달이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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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묘적-subtle : 원형적 패턴 또는 초개인적 형식들의 일반적인 영역. 편의상 저정묘(또는 심령적)와 고정묘로 구분해 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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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정묘는 아즈냐 차크라, 즉 제3의 눈이라고 요약되기도 하는 저급한 형태의 신비적인 듯한 경험과 심령적 사상들을 포함하고 주도하는 영역이다. 파탄잘리의 요가경에 싯디라고 불리는 이것의 구조에 대해 자세히 언급되어있다. 저정묘는 관조의 눈이 열리기 시작했다고 하는 의미가 있고, 초월적 영역의 최하위 영역이라는 의미에서는 심령적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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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묘는 사하스라라에서 시작하며 여러 하위국면 내에서 그리고 그 국면을 넘어서 상위의 초월, 분화 및 통합이 엄청나게 확장해 간다. 이 영역의 표면구조는 문화와 전통에 따라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고, 심층구조는 원형적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원형적 형상은 존재와 실존자체의 근본적이거나 원형적인 형상들에 대한 깊은 통찰을 낳는 초정신적 계발, 직관 및 영지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무형, 무색계 또는 근본적인 초월은 아니지만 마음, 존재, 신성 및 현시의 가장 정묘한 형상들에 대한 통찰이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힌두교에서는 비즈냐나마야코사, 대승불교에서는 마나스, 카발라에서는 게브라, 헤세드라고 부르고
위빠사나 또는 통찰명상에서는 이것을 유사열반의 단계라고 말하고, 상좌부불교에서는 색계사선.
또 나다-샤브드요가의 영역, 상징적 비전의 영역, 이슈타데바, 적정부처라고도 일컫는다.
오로빈도와 에머슨은 '자아를 넘어선' 또는 '마음을 넘어선'이라고도 불렀다.
여하간 정묘영역의 본질적 심층구조는 스스로 원형적 본질의 통찰이고 원형적 본질로의 동화인 의식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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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적-causal : 모든 구조들의 비현시적 근원 또는 초월적 바탕.
고정묘영역을 넘어서면 아뢰야식, 아난다마야코사, 프노이마, 카라나 샤리라(베단타), 비나와 쵸크마(카발라), 법신(대승불교)등으로 알려진 시원영역이 들어나는데 편의상 저시원과 고시원으로 나누어 기술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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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시원은 고정묘에서 시작했던 사상들의 최고점이 된다. 즉 원형적 신성으로서 원형적 신성으로 용해되거나 재흡수 되어 신성(불성)-원형 자체는 대단히 정묘한 광명 또는 비자 만트라 또는 개인적 이슈타데바(천사형상), 이담으로부터 특이점 근원, 궁극의 신으로 용해된다. 저시원에서 이들 원형적 형상들과 광명 모두는 궁극의 신 안의 자신들의 근원으로 환원된다. 따라서 의식 자체는 그 광휘와 함께 고등한 정체성으로 상향 변형된다. 상좌부불교에서 볼 때 이것은 색계사선의 정점이자 무색계사선의 시작에 해당하며, 위빠사나에서는 유사열반으로부터 정묘형상들의 출현이 멈추고 고시원의 무형상 상태로 천이하는 통찰에 해당하며 선의 십우도의 일곱 번째에 해당한다.
즉, 유형의 의식에서 무형의 의식으로의 전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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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시원을 넘어 고시원으로 들어서면, 모든 현시된 형상들은 더 이상 의식에 나타나거나 떠오를 필요조차 없을 만큼 철저하게 초월된다. 이것은 전체적이고 완전한 초월이며 무형의 의식이자 무경계의 광휘이다. 여기에는 진여의식과 동떨어진 자아, 그러한 의식과 다른 자아도 없으며, 신도 없고 궁극의 신도 없으며, 주체도 없고 사물도 또한 없다. 공의 삼매이다. 인법구망이라 불리는 무형삼매이다.
힌두교에서는 무분별삼매, 베단타에서는 즈냐나, 상좌부불교에서는 일곱 번째 선정, 위빠사나에서는 '노력 없는 자연스러운 통찰이자 열반의 시작'등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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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ultimate : 사고의 정지 또는 비현시 몰입상태를 충분히 통과해 나가면, 의식은 마침내 그 자신의 절대적으로 선험적이며 영원한 거처인 영성(불성, 진여), 광휘로 빛나고 모든 곳에 편재하는, 하나이자 다수인, 유일한 것이자 모든 것인 진여로 다시 깨어난다. 이 마음은 오로빈도의 초심, 초월적이며 한정지을 수 없는 진여로서의 의식이다. 즉 공의 상주 진여-shunyata tathata의 의식이다.
무상상매를 거쳐가면서 의식은 모든 것, 즉 조대, 정묘, 시원의 조건이며 그러함(여여)인 자신의 근원적 조건과 진여로서 전적으로 깨어난다. 주시하는 것과 주시되는 것은 오직 하나이자 동일한 것이 된다.
모든 사물과 사상이 완벽하게 분리되고 별개인 채로 남아 있으면서도 오직 하나인 궁극적 통일성이다.
이제부터 의식은 세계에 대하여가 아니라, 높든 낮든, 신성한 것이든 세속적인 것이든, 모든 수준과 모든 영역들, 모든 층을 통합하고 상호침투하면서 오직 전 세계과정으로서 작용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