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3. 욕구, 의지형성, 동기

일전엔 '의식의 기본구조'에서 의식의 기본구조의 단계와 그 수준(의식대역)의 특성과 자아성장의 위계 수준에 대해 언급했었고.

이러한 의식의 기본구조와 자아체계와 상호직조될 때의 제반 과정과 현상에 대해서 차후에 언급하겠다고 약속했었다.

오늘은 그중에 그 기본구조와 맞물려있는 동기 : '음식수준'

즉 욕구, 욕망, 근본동기(의식적일 수도 무의식적일 수 있는)수준-라인에서

'기본구조욕구'와 그 기본구조라는 사다리의 발판을 타고 올라가는 '자기 욕구'에 대한 언급이다.

의식의 기본구조(또는 파동)는
텍스트
의식의 기본구조를 참조하라.

각 의식의 기본구조에 맞물려있는 다른 라인들(도덕, 세계관, 감정, 성, 미학, 인지)에 대해서는 차후에 누군가가 묻는다면 차례차례 올려볼 예정이다.

모든 의식의 기본구조(대둥지에서의 기본 파동)는 구조발달상 비슷한 수준에 있는 세계 속의 다른 홀론과의 관계적인 교환체계며, 그 삶은 그런 교환에 의존하고 있다. 모든 작인은 교감 속에서 일어난다 agency-in-communion.

그러므로 그런 의존은 내적인 욕구로 느껴진다.

사물, 존제의 구조가 바로 이러한 관계적으로 교환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욕구(기본적 의지)가 발생한다.

이것은 '음식' 즉 물리적 음식, 정서적 음식, 정신적 음식, 영적 음식이라는 홀라키를 낳는다.

물리적 욕구는 음식, 물, 피난처 등 물질적 우주와의 물리적 관계와 교환을 나타낸다.

정서적 욕구는 다른 정서적 존재와의 관계를 반영하며, 정서적 따뜻함, 성적 친밀감 및 돌보기의 교환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신적 욕구는 다른 정신적 존재와의 교류를 반영하고 있는데, 우리는 언어적 의사소통이라는 행위를 통해 타인과 일련의 상징을 교환한다.(독신생활과 침묵을 맹세한 스님이나 수행자는 의사소통의 결핍이 성의 결핍보다 훨씬 고통스럽다고 한다. 이런 욕구는 관계교환에 근거를 둔 진정한 욕구와 충동들이다).

영적 욕구는 우리의 분리된 자기에게 도덕적 구속력, 의미, 해방을 주는 원천이 되며, 근본 바탕(진여)과의 관계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못한 상태가 일체개고, 또는 지옥이라고 표현된다).

욕구에는 기본욕구와 자기 욕구가 있다. 그리고 그 둘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기본욕구(기본구조욕구)는 개인의 발달에 나타나는 기본 구조의 일정한 작용을 수반하는 것들이다.

기본욕구에는 물리적 교환(음식, 물, 온기), 생물학적 교환(특히, 호흡, 성, 생동감), 정신적 교환(의사소통, 상징과 의미 단위의 교환) 그리고 그외의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기본구조는 존재의 사다리의 기본 단들이기 때문에 기본 욕구는 지속적인 성질을 가지고 있고 기본 욕구는 계속 나타나서 그 기능을 발휘한다.(음식, 호흡, 상징교환과 같은 욕구)

자기 욕구는 특정한 기본 구조 혹은 의식 수준에 있는 근접자기의 배타적 동일시에 의해 일어난다.

그래서 자기 욕구는 대부분 과도기적이며, 단계 특유의 그리고 일시적 욕구로서 자기가 특정한 의식 수준에 있는 동안에만 유지된다.

보통 자기 욕구의 위계를 보면, 충동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감(순응) 욕구, 자율적(존중)욕구, 실현욕구, 초월욕구로 되어있다.

자아체계 에 대해서는
이 텍스트를 참고하라.
개략적인 자아체계와 자존감에 대하여

물론 욕구와 동기의 수준은 더 자세히 8가지로도 분류되는데 여기서는 단순화시켰다.

또 그러한 욕구에 대한 압박과 억압은 건강한 관계적 교환을 왜곡하여 타인과의 관계적 교환의 붕괴라는 병리를 낳게 된다.

여하튼 수많은 욕구의 다양한 유형과 수준이 있겠으나 모든 진정한 욕구는 어떤 홀론(개체)이든 그 홀론(어떤 수준에서든)의 일생에 필요한 상호관계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욕구의 특성에 대하여 조금 더 언급해보자.

자기는 충동적 욕구에서 안전 욕구, 순응(소속감) 욕구, 자율적(존중) 욕구로 움직여 갈 뿐만 아니라 매 시기에 이전 단계의 욕구가 다음 상위 단계의 욕구들로 대체되는 경향이 있다.

자율적 단계를 예를 들어보자

자율적 단계에 있는 개인은 동시에 엄청난 양의 충동적 욕구를 갖고 있지는 않다. 고착/해리된 하위 성격을 차단하면서 그 욕구들을 초월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런 수준에 상응하는 기본구조(심상, 상징, 개념)가 완벽하게 드러나서 충분히 기능한다.

개인의 전체적 동기 부여 즉 욕구발생은

지금까지 나타났던 기본 구조 욕구와 그 사람이 주로 그 대역에서 당면하고 있는 자기 욕구(특정한 기본 구조 혹은 의식 수준에 있는 근접자기의 배타적 동일시에 의해 일어나는)를 포함하고 있다.

이 둘은 거의 모든 수준에서 생기는 관계적 교환의 요구에 따른 산물이다.

일반적으로 기본 동기이론에서는 '행동 경향성'을 욕동, 기대, 가치의 산물로 나타낸다.

행동 경향성 = 욕동 + 기대 + 가치

예를 들어,

먹을 것을 가지러 냉장고에 가는 자신의 경향성은 배가 고픈 정도(배가 고플수록 더 가려고 할 것이다),

냉장고에서 뭔가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냉장고에 많은 음식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냉장고에 뭔가 있을 거라고 기대할수록 더 가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음식의 가치(냉장고에 양파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특히 양파를 아주 싫어한다면 어찌될까? 냉장고에 있는 음식에 더욱 가치를 둘수록 더 가기 쉬울 것이다)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전반적인 '행동'은 기본적인 자기 욕망,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기대, 그리고 어떤 주어진 순간에 거기에 부여하는 가치의 총합이다. 그 결과로 의식의 스텍트럼 전체에 걸쳐서 동기를 산출 할 수 있는 매우 정교한 계산법이 나온다.

의식의 기본구조 그리고 자아체계의 성장의 완전한 발달 과정의 목적은

기본 구조에서 모든 배타적 자기감을 제거하여 기본 욕구가 분리된 자아감의 욕구로 인해 오염되는 것을 막는 데 있다.

기본 구조가 분리된 자기의 죽지않으려 고착또는 억압하는 병리에서 자유로울 때,

그들 본래의 기능적 관계로 자유롭게 돌아갈 수 있다.

이 말은 또한 이런 의미이기도 하다.

즉 자기 욕구는 한 수준에서의 충분한 성장기간 동안에는 의식의 기본구조(단계)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자아의 건강하고 바람직한 정상적인 욕구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욕구의 성질 자체가 특정한 기본 구조 혹은 의식 수준에 있는 근접자기의 배타적 동일시에 의해 일어나는 일시적인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면 성장을 위한 탈동일시와 죽음을 거부하여 상위의식으로의 초월로 성장하지 못한채 계속 그 의식대역에 대한 고집, 고착 그리하여 자아욕구의 병리가 발생하게 되고 그러한 병리는 기본구조 욕구를 오염시키고 뒤틀리게 하여 존재하는 매 순간이 고통이 되고 의식성장에 장애가 된다는 것이 문제의 촛점이 있는 것이다. (보통 병리는 충족후 사라져야 할 것들이 더~ 더~ , 많이~ 많이, 또~, 또~ 라는 고착, 함몰등으로 반복된다)

여담인데
바로 이런 부분의 오해와 몰지각으로 인하여
수행의 성취를 위하여 성욕을 이기려고 성기를 절단하고 절식하고 영양실조상태가 되는 것이 마치 욕심부리지 않는 훌륭한 수행자인것처럼 생각하거나
욕심을 버리라 했으니 돈도 벌면 안되고 가족도 내팽겨치고 세상과 등져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를 하게 되고,
명상을 한답시고 결국 스스로 자신과 자신과 관계된 주변과 당당하게 감당하고 책임지고 성장해가는 여정인 이 삶에서의 최소한의 나투어진 존재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제대로 누리지도 이행하지도 못하고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음식을 종교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먹고,

지배하려는 욕망없이 의사소통하고,

(머리속은 바글바글 생각으로 들끓고 있는데 입만 안열면 뭐하나, 그런데 또한 입만 열면 결국 나이런거 알아 넌 모르니 내가 너보다 훌륭하지? 이러고 있지)

자기 이익을 저울질하지 않고 상호인식을 교환하는 것 말이다.

분리된 자기는 대사슬의 사다리를 올라가고 사다리 단에 떨어져 나옴으로써 소외되고 소외시키는 실체로서 사라지고 자기 욕구를 모두 종결 짓는다. 그리하여 기본 욕구의 단순하면서도 자발적인 활동과 욕구들이 쉽게 드러날 때 생기는 욕구간의 관계만이 남게 된다.

즉 배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잘 뿐이다.

자기는 근원적 존재로 돌아가며, 모든 자기 욕구는 충족된 후 사라진다.

그리고 많지 않은 기본 욕구만이 공존의 네트워크,

즉 이 세상으로서, 또 이 세상과 함께하는 진여의 관계로서 남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