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 에고에 대하여
인간의 의식이 자아중심적 통합원리를 포함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다양한 경험들의 축적된 저장소 이외의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에고로서의 과정은 다른 경험들을 하나의 통일체의 부분으로 함께 묶는 능력과 상호 관련시켜가면서 그것들을 평가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서로 반대되는 경험들의 통합은 의식을 지배하기 쉬운 전개인적 강박충동과 반발작용의 속박으로부터 의식을 해방시키는 조건이다. 그러한 통합을 확립하려는 초기 시도는 에고의 형성을 통해서 일어난다.
인간의 삶에서 에고가 담당하는 부분은 배에 있어서 배를 안정시키기 위한 바닥 짐의 기능과 비교될 수 있다.
바닥짐은 배가 지나치게 요동치는 것을 막아준다. 그것이 없으면 배는 너무 가벼워서 불안정하게 되고 전복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정신 에너지는 전개인적 동물적 의식으로부터 물려받은 비교적 독립된 본능들의 활동 경향성을 한데 묶기 위한 잠정적인 핵이 없을 경우, 이중적 경험의 미로 속에 갇히게 되고 조금식 낭비하게 될 것이다.
에고의 형성은 의식과정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주는 목적과 조직화된 삶을 살도록 해 주는 평형상태의 유지를 확보하는 목적에 기여하는 것이다.
명상의 길에 들어선 많은 구도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중에 깨달음에 대한 오해만큼이나 에고에 대한 오해가 심각하다. 에고는 오직 사라지기 위해 출현한 것으로, 영혼의 오랜 여정에 아무 필요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 그저 짐덩어리로 그리고 깨달음을 방해하는 것으로 상상하는 것은 잘못이다. 에고는 영적 노력을 통해 초월될 수 있고 성장하여 벗어날 수 있기 때문에 영속적인 것은 아니지만, 에고 형성의 국면은 초월할때까지는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으로 존중되어야 한다.
명상이나 깨달음을 추구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체로 전개인적 고착, 해리 및 강박관념들로 고통받고 있다. 즉 오히려 명상이나 깨달음의 의미를 삶속에서 찾아내거나 실현시켜가는 건강한 에고의 현존인 사람들보다도 자신들의 존재를 압도할 만큼 위협하는 인간 이하의 분노, 충동 및 욕구들을 초월할만한 강한 에고를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한곤 한다.
이런 이들이 순전히 에고의 소멸에만 맞추어진 명상의 지도자나 오히려 전에고적인 영역을 다루는 명상그룹과 연결되었을 때 그들이 형성해야 하고 강력하게 할 필요가 있는 에고적 개념화와 통합이라는 그 구조를 무시하도록 고무된다.
에고를 평가절하하고 전에고, 즉 몸, 느낌, 충동, 감각, 체험적 즉각성, 챠크라적인 영역, 따라서 초월되지 않는다면 그들이 극복하려고 애쓰는 바로 그 문제의 많은 부분을 구성하는 영역들을 실제로 강화하는 꼴이 되고 만다.
명상이란 의식이 이전에 논리의 자유로움을 확립하려고 작업햇던 것처럼 논리로부터 자유로움을 성취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누구라도 에고 논리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지만, 우선 먼저 에고 논리를 자유롭게 하고, 해방시키고, 확립했을 때 오직 그 때에만 가능하다.
대다수의 공통적인 병리적 문제는 의식활동이 자기중심적이며 유아적이고 전개인적 양식으로부터 합리적이고 통합적이며 양심적인 에고구조로의 전개과정을 저해하는 발달 유산에 기인한다.
대부분의 신경증은 에고 초월의 결핍 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의 에고-존중의 결핍 때문에 고통받는다.
의식의 성장은 무엇보다 먼저 강력한 에고-존중의 구축과 촉진으로의 명상이어야 하고,
그런 다음
오직 그 다음에만 에고-초월의 명상이 되어야 한다.
탐진치의 근원도, 공부를 하고 깨닫으려 의지를 내는 즉 탐진치를 버리려 하는 근원도
같은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