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 질문답 - 사티, 위빠사나, 관, 통찰명상
사티는 무엇이고 위빠사나, 관, 통찰명상등의 수행법과 많이 다른겁니까? 부처님의 수행법은 무엇이었습니까? 다 정통이라고 하는데....
현상이 거울에 비취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는 사물을 비추는 거울과 같은 기능이 있는데
이것을 manas 라고 하고, 한문으로 " 의(意)"라고 번역 했다.
그리고 감각기관이 있는데 이것을 "6입(六入)", "6처(六處)"라고 한다.
인식대상을 dhamma라고 하고, 한문으로 "법(法)"으로 번역,
인식대상과 감각기관이 접촉하여 인식대상에 대한 정보를 인지해서(catch),
의(意)-마음의 거울로 그 정보를 보내서, 의(意)표면에 상을 맺게 하는데
이것을 vinnana라고 하며, 한문으로 "식(識)"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의식(意識)"이라고 하는 것은 인식대상을 감각기관이 잡아서
의(意)표면으로 보내서 상을 맺게 하는 전 과정을 줄여,
즉, 인지와 반영을, 그리고 반영되는 판인 마음의 거울을 통칭하여 의식이라고 한다.
이때 정보가 "의(意)" 표면에 반영되는 것을 '자각하는 기능이'
"식" 기능과 동시에, 그러나 분명히 다르게 존재하는 데 이것을 붓다는 sati라고 했다.
달개비는 오래동안 이것을 깨어있음이라고 불렀다.
한문으로는 "염(念)"으로 변역되는 데 8정도에서 7번째 正念이 바로 이 것이다.
따라서 인식대상에 "의", 또는 "마음" 표면에 상이 맺히는 순간(識)을 알아차림하는 것을
사티(Sati)라고 한다.
이러한 의식의 과정에서 인식과 인식의 해석에, 있는 그대로와 착각(왜곡)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즉 식의 차원에서 자각되는가, 아니면 망상 차원에서 자각되는 가의 문제이다.
이렇게 맺히는 상이 욕망과 이기심, 분노나 적대감, 또는 편견과 선입관등의 즉 기억에 붙어있던 번뇌(마음노페물)와 결합, 발전해 덮혀서 인식하는가(왜곡, 착각), 2차, 3차 가공과 왜곡이 없이 있는 그대로 인식하는가의 차이이다.
식(識) 정도의 차원에서 알아차림이 되면, 도에 들어갈 준비가 되고, 그러한 도과(막가파라-magga-phala)의 여정으로 있는 그대로(여실지견-如實知見)의 통찰 - 반야지가 깨어난다.
다시 돌아와서 또 인식대상을 사유하느냐, 알아차림하느냐 즉 반영되는 정보를 단지 반영되는 대로 자각하는가, 아니면 사유하는가의 과정을 잠시 보자.
예를 들어(여기서는 매우 단순화시킨 예이다)
앞집 개가 짖을 때 단지 [들림]하는가,
들림 차원에서 알아차림되는가,
아니면, 저 개가 왜 짖지, 도둑이 들어왔나, 전화를 해볼까?
등등으로 소리가 선입관이나 다른 정보와 결합하여 살아나가면 망상차원에서 자각 되는 것이다.
마음을 현재에 머문다고 하는 것은 인식대상을 단지 알아차림만 하고,
다른 정보와 결합하여 발전시키지 않는 것이다.
물론 개 짖는 소리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다.
그래서 훈련을 통해서, 알아차림과 마음집중 훈련을 통해서 가능하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하는 힘을 훈련하는 것이 사티수행이다.
흔히 올바른 기억으로 번역되는 念의 빠-리어 sati는 알아차림, 인식, 의식, 기억 등의 의미이다.
그러나 통상 sati는 인식대상이 의식에 반영되는 것을 알아차림 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한문에서 念도 기억하다보다는 오히려 자각하다 라는 의미로 사용한다.
기억하다 라는 용어는 記 또는 記憶이다.
영어로는 sati를 memory가 아니라 awake로 번역한다.
의식에 반영되는 인식대상을 알아차림 하는 기능을
싸띠(sati, 念)라고 하며, 알아차림 한 마음을 인식대상에 밀착 고정시키는 기능을
사마디(samadhi, 定)라고 한다.
알아차림 한 마음을 인식대상에 밀착 고정시켜서 인식대상의 현상을 보고(사티수행)
그 현상에 내재해 있는 실재를 통찰하는 기능을 위빠싸나(vipassana, 觀)라고 한다.
통찰한 결과 해당 현상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아는 기능 즉 통찰지를 뺜냐(panna, 慧)라고 한다.
달개비가 반야라고 쓰거나, 표현할 때의 반야는 慧의 100프로에 해당하는 대적광의 ‘광’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데, 넓은 의미에서 보며는 혜의 시작부분도 반야라고 할 수 있겠다.
좀더 자세히 구분해보면
현상이 마음에 반영되는 것을 알아차림 하는 것을 싸띠(念)수행 또는 알아차림 수행이라고 하고,
인식대상에 알아차림 한 마음을 밀착 고정시켜서 현상에 내재한 실재를 통찰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 觀法(관법)수행, 洞察(통찰)수행, 또는 위빠싸나 수행이라고 한다.
통찰한 결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智慧(지혜)이다.
그래서 의식에 반영되는 현상을 알아차림 하는 기능이 이후 전개되는 마음집중, 관찰, 그리고 통찰의 모든 과정의 첫단추이기 때문에 알아차림은 가장 중요하다.
대승불교에서는 알아차림, 관찰, 지혜를 마음집중(三昧)에 포함하여 이해한 것으로 보이고
부파불교에서는 알아차림, 마음집중, 지혜를 위빠싸나(觀法)에 포함하여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붓다는 알아차림이 마음집중, 위빠싸나, 지혜를 선도하며 그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보았고,
당신이 계발한 수행법을 알아차림수행(sati, 念)이라 정의했다고 한다.
붓다는 미가다-야에서 다섯 비구들에게 행한 최초 수행지도(初轉法輪)할 때,
中道(중도), 四聖諦(사성제), 八正道(팔정도)에서 알아차림(sati, 念)이란 용어를 사용한 이래
꾸씨나-라에서 돌아갈 때까지 이 용어를 사용했다고 한다.
붓다 돌아가신 후 부파불교 시대에 붓다 정통수행법을 알아차림과 병행하여 위빠싸나 수행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위빠싸나란 용어를 중국어로 번역할 때 觀法이라고 했다.
또 그 무렵에 마음집중을 의미하는 사마디와 더불어 쟈나(jhana)를 마음집중의 의미로 즐겨 사용했는데 이 용어를 중국어로 禪(선), 禪那(선나)로 번역했다.
흔히 參禪(참선)이라고 한다.
그리고 알아차림이란 용어가 영어로 번역되어 meditation이라고 했는데 이것을 다시 한문으로 번역할 때 暝想(명상)이라고 했다.
불교수행을 지칭하는 용어인 알아차림, 위빠싸나, 관법, 명상은 넓게는 다 같은 의미이다.
단지 사용하던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