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1. 질문답 - 관념과 실재

질문 :

'실재는 이다. 무경계다, 분리된 자아는 없다'라고 들었습니다. 또한 분리된 자아는 환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자신과 타인은 여전히 같지 않습니다. 즉 자신과 타인 사이에는 분명히 경계가 있습니다. 여전히 이렇게 질문을 하는 저와 스승님은 아직도 저에게는 하나가 아닙니다

Note

매순간 벌어지는 오류

지도와 영토, 경계와 실재, 상징과 사실, 이름과 이름 붙여진 것을 혼동하는 오류다.

즉 이러한 오류, 분별과 경계가 실체없음을 직시하는 것이 달개비가 말하는 '올바른 견해'이다.

실재는 이라고 말하면

모든 실체가 단순하게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뒤에 무라는 순수한 진공, 무분별한 일원론의 혼돈만 있는 즉 마치 무형무색의 한 덩어리의 스프처럼 오해를 한다.

이란 그런 의미가 아니다.

다양한 세계,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나와 너가 있고 우리가 있고, 생생한 아픔과 생이 있고, 죽음이 있고, 고고한 달빛과 태양이, 선과 악이, 즐거움과 고통이 모두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들은 개별적 존재 이상의 것이다.

그것들은 자신이 아닌 것(자신 밖의 모든 것)과의 관계 속에 있음이다.

즉 모든 사물과 사건이 상호의존적이며 상호침투하는 관계로서 존재한다.

사실 실재란 무경계라고 하는 통찰은 오히려 너무도 단순한데, 그렇게 너무 단순하고 가까워서 어쩌면 그토록 어려운가보다

예를 들어보면 무엇을 본다고 할 때, 자연의 풍경을 볼 경우,

눈은 '홀로 분리된 단일한' 사물을 보는 것인가?

과연 눈은 한 그루의 나무, 한 개의 파도, 한 마리의 새를 본 적이 있는가?

나무에 하늘이 더해지고 거기에 풀과 땅이 더해진, 파도에 모래가 더해지고 거기에 바위와 하늘과 구름이 더해진 온갖 종류의 서로 짜여진 패턴과 조직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전체로의 풍경이지 않은가?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경우에도,

시야 전체에 주의를 기울인다면, 한 번에 한 단어만 보고 있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눈은, 실제로 읽는 것은 아니더라도, 이 화면의 모든 문장, 단어 그리고 포스트 바깥의 스킨인 개망초꽃과 초록빛의 컴퓨터 화면, 그에 더해서 주변의 배경들, 벽이라던가 책상, 화면을 보고있는 자신의 마우스에 올려진 손가락이나 무릎등, 그리고 방안이거나 사무실의 다른 부분들을 볼 것이다.

따라서 그대의 즉각적이고 구체적인 각성에는 어떤 분리된 사물도, 경계도 없다.

실제로는 단일한 실체를 본 적이 결코 없다.

언제나 풍요롭게 다양하게 짜여진 하나의 장을 본다.

그것이 그대의 즉각적인 실재의 본질이다.

물론 즉각적인 각성의 장에 정신적으로 경계를 첨가해 겹쳐 놓을 수는 있다. 예를 들어, '한 그루'의 나무, '한 개의'의 파도, '한 마리'의 새와 같은 단지 몇몇 두드러진 영역에만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시야의 한 부분에 한정지을 수 있다. 그런 다음 각성의 장에서 나머지를 의도적으로 배제시킴으로써 특정 대상만 인식하는 척 할 수는 있다.

즉 각성에 경계를 도입한다는 의미에서 집중할 수 있다.

지금 읽고 있는 단어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각성의 장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척 할 수 있다.

이것은 삶에 대단히 유용하고 분명히 필요한 책략이다.

또한 이것이 바로 '형식적인 논리 조작'이라는 심리학적 이름이 붙는 '이성'이라는 기능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그러한 전제 즉 마치 분리된 하나의 조각처럼 취급했을 뿐 실재로 분리된 것이 아님을 잊었을 때, 엄청난 결과를 초래한다.

집중할 수 있고 한 번에 '하나의 분리된 사물'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는 것은 실재 자체를 수많은 '분리된 사물들'의 다발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게 하는 위험성을 초래한다.

이 분리된 사물들은 실은 각성의 장에 스스로 첨가한 경계의 부산물이다. - 즉 임시로 분리된것으로 가정하는 것일뿐 실재 분리된 사물이 아닌 것이다.

즉 우리가 사물을 인식한다는 것은 실제로 경계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경계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관념의 세계가 바로 이러한 착각의 세계다.

그대가 말하는 '나', '타인', '세상', '하나', '실재', '경계', '무경계' 이 모든 것들이

실재가 아닌 관념의 세계속에서의 이름표일 뿐인것이다.

현실이라고 말하는 그대의 우주는 실재의 우주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관념의 우주이다.

모든 사물은 이다, 모든 사물은 둘이 아니다, 또는 모든 사물은 상호침투해 있다고 말할 때,

이것은 차이점을 부정하고, 개별성을 무시하고, 세상을 획일적인 걸죽한 액체수프처럼 균질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은 온갖 유형의 특징과 표면과 선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그들 모두는 하나의 무봉의 장으로 짜여져 있다는 말이다.

모든 경계-분별(이름표)은 단지 천의무봉의 우주로부터 추상화해낸 것, 본래 있지 않은 분리를 만들어낸다는 의미에서 환상이고, 사물과 사건사이의 경계 뿐만 아니라 모든 대립들 간의 경계는 궁극적으로 실재하지 않는 거짓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름과 모양(명색)을 실재와 혼동하지 말아라 라고 하는 것이다.

명색이 무엇이냐? 그것이 생각-관념이다.

즉 생각(사고)과 사실을 정확하게 구별하라고 하는 것이다.

명색을 버리고, 모든 분별(경계들, 이름표, 관념)이 사라질 때, 그곳에 남는 것이 사물의 진정한 본성이다.

이성너머이다. (여기서도 또한 이성을 초월하면 이성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포함된다.)

그러므로

그 본성에 관해서는 어떤 예측도 불가능하다.

그것을 진여라고 부른다. 이라고 부른다.

보편적이고 무분별적이며 불가지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