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8. 질문
대념처경에 보면
몸에서 몸을 관찰한다는 문구가 있는데, 도통 잡히지가 않습니다.
몸을 관찰한다는것은 몸의 느낌 각 부분부분 집중되는 곳에서의 느낌이 어떠한가를 느껴보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몸에서 라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냥 몸을 내가 관찰한다라는 말이 아니고, 몸에서 몸을......
나 라는 의식중 감각이라는 것을 가지고 몸을 관찰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몸에서" 라는 의미는 "나 라는 의식의 일부에서" 라는 의미는 아닌것 같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한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한다" 등등 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알고 싶습니다.
현존:
제가 하는 모든짓(특히 마음짓)이 모두 거짓이라 두려워하여 어떠한 것도 마음을 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념처경, 청정도론, 출입식념경등에서 팔정도에 대한 설명 가운데 「바른 마음챙김」- 정념(定念) - 사티에 대한 해설은, 「바른 이해[正見]」에 대한 해설과 함께 가장 많은 분량이 배려되었다. 이는 마음챙김(사티)수행의 중요성 때문이라고 본다.
즉 관찰하고 알아차림 하는 것이 '나라는 의식의 일부 - 나의 인식과 감각을 가지고'가 아니라 그러한 감각, 인식의 바탕인 각성(사티)으로 관하고 알아차림하는 것 그것이 팔정도의 정념(定念) - 사티수행이다.
수행 여정상 출입식념(호흡에 대한 사티)의 수행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마음의 고요와 마음집중(사선 가운데 한 가지의 선정)을 얻은 후, 수행자는 호흡의 시작(origin of breath)을 검토한다. 사대(四大 ; 地水火風)와 다섯 감각기관과 같이 사대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물질적인 현상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육체(色)에 의해서 호흡이라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인상(觸)으로부터 인식(識)이 생겨나고, 이 인식과 함께 오온(五蘊)의 나머지 세 가지 요소인 느낌(受), 표상작용(想), 의지작용(行)이 생겨난다는 사실도 통찰하게 된다.
이렇게 실재로 사티를 수행해보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나'라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단지 정신적인 현상(名)과 육체적 혹은 물질적인 현상(色)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은 정신적인 현상(名)과 육체적 혹은 물질적인 현상(色)일 뿐, 어디에서도 실체적인 '자아'는 발견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바로 여기에서 질문한 요지가 드러난다.
자신의 육체적인 동작이나 행위, 심리(감정, 느낌, 사고)에 마음을 챙겨 알아차릴 때,
처음엔 '나는' 또는 '내가'라고 하는 자아감이 개입되어있을 뿐 아니라,
그 ‘자아감’이라고 하는 것은 사고, 감정, 느낌, 행위(동작), 의지등이 마구 섞여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사고 즉 이성으로 해석하거나 알아차려야 할 것을 감정이나 느낌으로 해석하거나, 반대로 감정임을 알아차려야 할 것을 이성으로 해석하거나 하는 오류가 일어나고, 마찬가지로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생각이나 감정, 느낌과 동일시해버리는 오류들이다.
그러한 자신에 대하여 드디어 도대체 ‘나는 무엇인가?’라는 눈돌림이 시작되고
그리하여 여태 ‘나’라고 뭉뚱그려 대충 알고 있던 ‘나라고 여기는 것’들의 실체에 대한 사념처 관찰이 사티수행(마음챙김, 알아차림, 주시, 관(위빠사나)이다.
즉 뭉뚱그려 알고 있던 '나'에 대한 분류, 분리, 해체, 통찰, 통합작업이다.
그래서 사티수행시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고, 또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고, 또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며, 또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여, ‘몸’이라고 하는 육체(色)적, 물질적 현상의 실체를 관하게 되는 것이다.
즉 나의 몸, 나의 느낌, 나의 마음인 몸, 느낌, 마음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가 빠진, 몸, 몸의 현상, 몸의 현상들의 생멸을 사티에 의해 관찰하는 것을 ‘몸에서 몸’을 관찰한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고,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한다는 말이다.
즉 무선택 무관점 사티로의 사념처수행을 말한다.
그리하여 인격체라고 불리는 에고라는 실체 또는 자아는 어디에도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다만 여러 가지 요건에 의해서 조건 지워져 있는 육체와 마음의 흐름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본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전적으로 무상하며, 괴로움이며, 영원한 실체가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해할 자가 없는 현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