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2.2. 사티로 접촉되는 순수의식의 한 예

관찰 예)

{한 사람이 자신을 괴롭힌다(여기서 괴롭힌다라고 표현된 내용은 - 비난, 꾸지람, 원망 등) 또는 물리적 폭력을 가했다.

자신은 화가 나고 상대를 때리고 싶다.}

이 상황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내면 현상은 먼저 크게 1차 반응과 2차 반응으로 나눠진다.

1차 반응은 자신 안에서 일정한 양의 생명에너지를 일깨운다.

이 에너지는 자신의 에너지 중심 원천에 보이지 않게 놓여 있었다가 자아에 대항하는 비자아로 나타난 에너지를 인식함으로써 각성된다(1차 이원주의).

그 낯설고 공격적인 에너지는 자신을 자극하여, 비자아의 힘과 균형을 이루는 반동력을 이끌어낸다. 이러한 반동력은 아직은 분노의 행동이 아니다. 그것은 아직 정확한 형태를 갖추지 않았다.

그것은 곧 거푸집에 부어질 예정이지만 아직 부어지지는 않은 물질같은 것이다.

기간이 없는 순간동안, 자신의 원천에서 동원된 이 증가하는 힘은 아직은 분노의 힘이 아니다.

그것은 비공식적인 힘, 순수한 생명의 힘이다.

이러한 반응은 외부 세계의 어떤 지각, 어떤 지식과 부합한다. 따라서 그것은 어떤 의식과 부합한다.

그러나 그 의식은 습관적으로 그렇게 불렀던 것과는 매우 다르다.

그것은 지적이고 명확하고 뚜렷한 에고수준의 정신적인 의식이 아니다.

그것은 무지한 의식이고 심오하고 반사적이고 유기체적인 비지성적인 방법으로 외부 세계를 아는 하나의 순수의식이다.

비이원적 의식이다.

게다가 이것은 내적인 관찰에 의하여 확인된다.

자신은 이 에너지가 자신의 머리로 가는 것을 느낀다. 머릿속에서 이 에너지는 천개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자신은 에너지가 표면이 아닌 좀더 심층의 유기적 존재로부터 발생되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1차반응은 극도로 빠르고 만일 매우 주의깊지 않다면 절대 관찰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그러나 만일 최초의 분노(에너지)가 발생한 후 자신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알아차린다면

분노의 이미지를 공식화하는 자신의 지적 의식의 행위에 앞서 짧은 순간 동안, 순수의식으로부터 나온 순수하고,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유기체적 힘을 발견할 것이다.

1차 반응에 의하여 만들어진 자신의 존재의 역동적인 변화, 외부 세계의 에너지( 이 경우, 자신을 괴롭힌 사람)에 반응한 에너지의 동원은 2차 반응을 야기한다. 그것은 지적 의식의 반응 작용(기억정보에 근거한)이다.

2차 반응은 자신안에서 발휘된 에너지를 분리함으로써 원래의 움직이지 않는 성질을 회복하려 할 것이다.

우리가 독특한 존재로서 절대적으로 존재한다는 근본적인 요구 또는 주장을 한번 생각해보라.

우주에 대한 우리의 지적인 이해 밑바닥에는 자아와 비자아의 줄일 수 없는 구별이 존재한다.- 즉 1차 이원주의. '나'와 '나'이외의 것)

우리가 심리적-신체적 유기체와의 동일성-실존적 수준-에 대하여 말할 때 불러일으키는 것이 바로 이러한 구별이다.

순수의식일 때, 동일시가 없는 순수 유기체적 의식일 때 거기에는 이러한 구별이 없다.

지적인 의식에서는 자아와 동일시되기에-에고수준- 오직 자아만이 존재한다고 단언하게 된다.

자신의 지적의식만이 자아를 인식할 뿐이다.

외부 세계에 대한 지적인 지식을 보유했다고 생각할 때, 오직 외부 세계와 접촉하는 자아의 변화의 지식만을 보유한 것이다.

'주관성의 감옥'이라고 부르는 이 편파적인 지적의식 덕분에

이미 자유임에도 불구하고 다시 거기에 주체와 객체로 나뉘어서 주객구별이 없는 순수의식을 외면, 저항, 도피하게 된다.

2차 반작용의 과정에서 자신은 '존재해야 한다'는 지적인 필요성은 즉 '나의 에고는 강하고, 변하지 않고, 영원하고, 안정적이다' 등등의 생각은 자신안에 있는 에너지의 이러한 동원에 의하여 좌절된다.

이 동원은 1차 이원주의에 의하여 불가능하게 된 외부세계의 수용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에너지의 동원에 대한 두 번째 반작용은 이 동원에 반대하는 거부가 될 것이다.

그러나 우주의 질서에 대한 이런 반대는 실패한다.

자신 안에서 동원된 힘은 다시 존재하지 않는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동원된 에너지에 대한 거부는 분열에 의한 에너지의 파괴란 결과를 낳게 된다.

즉 매순간 순수의식, 유기체적 의식, 순수생명에너지는 상징적 앎의 방식, 개념, 이미지, 생각과 구별로 붕괴되고 흩어지는 이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이미 진여이고, 인 모든 존재가 이 순간 그러한 전체의식을 분해하여 각 의식대역으로 좁아지는 현상이고

또한 각 의식의 스펙트럼으로 나투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와서

두 개의 다른 의식이 그 두 반응에 부합한다.

자신의 순수의식은 1차 반응에, 자신의 정신적 또는 지적 또는 상징적 의식은 2차 반응에 부합한다.

상징적 의식은 이원론적이다.

그 안에서 발생하는 상상적-감정적 과정은 긍정하기 또는 부정하기, 불쾌유쾌, 호불호, 앞뒤이다.

그에 반해 유기체적 의식(순수의식)은 비이원적이다.

그 안에서 솟아나오는 생명의 힘은 형식과 이름이 없고 항상 동일하며, 그 후 활동하게 될 이원론적 형식과는 관계가 없으며

자아와 비자아의 구별이 없다.

순수의식은 우주를 완전하게 인식한다.

그것의 작용이 초시공간적이고 무한이고 영원하다.

무한하고 영원한 모든 것은 동시에 공간과 시간의 모든 지점에 존재한다.

완전하게 안다는 것의 의미가

상징적-지도 지식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세상의 사실들이나 지금까지 만들어온 책, 정보, 기술등 모두를 알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절대 그렇지 않다.

각각의 사실의 실재를 알고, 실재가 되는 것이다.

그 실재의 추상적인 '사실들'이 단순한 반영물에 불과하다는 실재를 아는 것이다.

이해하는 하나 하나들을 아는 일이 아니라

그 하나 하나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현상의 기저에 존재하는 것.

의식적 관심의 지나가는 형태 전부에 생명을 불어넣는 것.

비공식적인 이름과 형상이 없는 이 에너지, 이 의식이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 진여의 수준에서 발휘되는 에너지(순수의식)는 순수하고, 형태가 없고, 비시간적이고 무한하다.

그러나 그것이 스펙트럼의 수준(각 의식의 틀)을 통해 심층에서 표면으로 나오면서 이원론적 이미지와 형태를 갖게 됨으로써 붕괴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각각의 수준은 거기서 발생하는 이원론적 분열의 성질로 특징지어진다.

예를 들면 실존의식대역에서는 자아에너지와 환경에너지로 분리되고, 에고의식대역에서는 더욱 분해되어 신체적에너지와 정신적에너지로 나뉘고, 그림자수준에서는 이런 붕괴가 더욱 계속된다.

그리하여 최초의 순수에너지는 그 자체가 분리되고 조각조각 나눠진다.

처음의 분노의 관찰로 돌아와서 분노의 여정을 다시 정리해보자.

때리는 행위, 또는 맞는 행위 그 자체는 가장 단순한 형태로 생각할 때

그저 우주 내부에서 하나의 움직임이다.

그러나 제1차 이원주의가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내 안에서 발생하는 에너지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1차 이원주의가 강해지기 이전 단계에서 에너지는 아직 순수하고 이름과 형태가 없다. 정지한 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뒤 초시간적인 에너지의 발휘는 생물사회적 대역을 통과함에 따라 지속기간을 갖기 시작한다.

최초의 에너지는 생물사회적 대역에 존재하는 가족과 사회의 내부화된 관계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 대역(2차 이원주의)에서 분노의 형태를 갖게 되고

분노의 형태를 가진 이 에너지는 그 다음 대역인 에고의 대역(3차 이원주의)에서 자신의 머리로부터 발생하고 머릿속에서 그것을 분노라고 언어화한다. 여기서 다시 이 에너지와 공격을 투사하고 두려움이 발생하는 그림자(4차 이원주의)가 발생한다.

그리하여 최초의 순수에너지는 각 의식대역의 이원성에 의하여

부정, 이동, 반전, 분열, 대체, 퇴행, 행점화, 합리화 등등으로 마침내 분할되고 흩어지고 분리되고 소멸한다.

물론 이러한 모든 세상만물이 나투기 이전 영원히 진행되는 이 놀이는

창조와 소멸

으로부터 발생하여 으로 사라짐

항상 현재이고 이미 이 순간인 순간으로부터 순간까지의 동시 자발성.

,

진여,

이것 외에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명확하게 관찰하고, 의식의 수준, 층 또는 덮개가 삶의 매순간 어떻게 발생하고 생성되는지 이해하고,

실재가 에너지화되고 그 에너지는 모든 개념화로 조각조각 나누어지는 현장을 포착하는 것.

그것을 정확하고 명료하게 보게 하는 힘이 사티이다.

그리하여 각성은 마침내 그의 원천 대적광으로 깨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