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 본래면목 -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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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언가를 알고자 할 때 앎의 대상을 관찰한다.

그렇게 하여 많은 것을 밝혀냈고, 활용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작 관찰하는 그자체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관찰하는 것은 마음의 눈이다.

마음의 눈을 확인하면 나와 우주의 본성을 깨닫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마음의 눈을 확인하기가 쉽지않다.

게다가 확인하려 들지도 않는다. 눈은 눈을 볼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 말은 눈앞에 있는 물건을 보듯이 볼려는 습관을 차단하는 말이다.

마음의 눈은 대상이 아니다. 물건 보듯이 상대하여 보려는 태도만 버리면 된다.

눈이 눈을 본다는 것은, 눈의 활동속에서 눈을 알아차린다는 말이다.

지금 깨어있어서 또렷또렷이 분별하고, 아는 이놈은 무엇인가?

분별하는 내용에 관심두지 말고, 분별하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차리자!!

<<눈은 눈을 볼 수 없다는 고정관념이 가로막기 때문이다.

이 말은 눈앞에 있는 물건을 보듯이 볼려는 습관을 차단하는 말이다.>>

이 부분에 말씀드립니다.

보통 '눈은 눈을 볼수 없다'라는 말은 '눈이 눈을 본다'는 말과

눈, 본다, 보지 않는다가 등가로 비교되어질 수 있는 즉 눈이 눈을 못보다가 눈이 눈을 보게된다고 하는 비교상대를 이룰 수 있는 같은 맥락으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현정과 파사의 관계처럼 방법과 여정이 다르고, 다른 방향에서 와서 같은 곳에 도착한다던가 또는 다른 곳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일때라면 두 문장의 현존을 비교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달개비가 여기에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그러한 방법상의 다른 여정을, 그래서 도착한 곳이 같거나, 다른 곳이거나, 거기서 더 나아가는 그런 의미로가 아니라

아예 의미 자체가 다르다는 것, 즉 관점이, 맥락이 다른 문장임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눈은 눈을 볼 수 없다', '눈은 눈이 아니라서 눈이다'일 때의 '눈'은 본질, 바탕, 당체를 말합니다.

'눈은 눈을 볼 수 없다', '눈은 눈이 아니라서 눈이다'일 때의 '볼 수 없다', '눈이 아니다'는 , 비현현, 비상을 말합니다.

'눈이 눈을 본다'일 때의 '눈'은 보는 자, 주시자, 주체를 말합니다.

'눈이 눈을 본다'일 때의 '본다'는 반야지를 말합니다.

ㅇㅇㅇ님의 말씀은

눈이 눈을 본다는 말은 색에 팔려있는 안광을 거두어 그러한 색의 나툼이, 현현이 이루어지는 그 당체, 바탕으로 돌아서서 당체 스스로 스스로를 본다는 의미의 눈이고, 봄입니다(깨어남, 눈뜸, 반야지). 잠을 자는 놈이 나는 자고 있다고 어찌 말할수 있느냐라고 할 때 자고 있음을 스스로 보게되는 앎(반야지)이 눈이 눈을 보는 것이지요. 그러할 때 잠자는 놈이 스스로를 자고 있구나라고 알지 못함을 눈은 눈을 볼 수 없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색 --> 바탕 --> 바탕 스스로 눈뜸 --> 색과 바탕을 꿰뚫어 봄 --> 불이, 일진법계로 --> 중생이 부처로 회귀하는 방향,

즉 눈이 눈을 모르고 보지 못하다가 눈이 눈을 본다로, 색에서 색이 나투어지는 그 바탕으로의 을 보고 색즉공의 눈이 뜨여지는 여정상의 방향에서의 관점으로 사용하시는 것처럼 보이십니다.

달개비가 말하는 (또는 금강경에서 말하는 보살은 보살이 아니어서 보살이다, 부처는 부처가 아니라서 부처다 )

눈은 눈을 볼 수 없다는 말은 어떤 특정 상태를 말하는 것(고정관념, 또는 보는 습관, 또는 주시자 자리)이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눈은 눈을 볼 수 없다 할 때, 볼 수 없는 것은 눈이 아닌 것이고, 눈이 눈이 아니기기에 눈으로 비로소 존재한다는 말이지요.

진실이 무아이기에, 무상이기에, 제법유아가, 만법이, 삼라만상이 나투어질 수 있음이라는.

바탕으로서의 즉 본질이 어떤 모양도 어떤 색깔도 어떤 느낌도 아닌 그 어떤 대상으로 포착될수 없는 (눈은 눈이 아니어서 눈이다, 보살은 보살이 아니어서 보살이다)이기에 모양과 색깔과 느낌과 갖가지의 현현이 도리어 현현되고 나투어질수 있다는 현상학적 본질을 표현하는 관점입니다.

이어야만 색일수 있음을, 무아이므로 유아일수 있음을, 무형상이므로 형상일 수 있음을 드러내는 현정인 것입니다.

즉 색이 색인것은 색이 아니기에 색인 것입니다.

눈은 눈을 볼 수 없다 즉 눈이 눈이 아니기에 눈인 것입니다.

색과 공의 관계, 진여의 성품과 그 성품의 나툼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즉색의 관점에서 ''과 '색'의 관계를 드러내는 표현인 것입니다.

본다, 못본다의 관점, 맥락에서는 '눈은 눈을 볼 수 없다(ㅇㅇㅇ님의)'라는 말의 의미는 '눈'이 주체(주시자)를 말하고, '볼 수 없다'라는 말이 반야지가 켜지지 않은 주체자리를 의미하게 되고, 그래서 아직 공부가 덜 된, 눈이 안 떠진(반야부재) 하나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보통 '눈은 눈을 볼 수 없다, 눈은 눈이 아니라서 눈이다'라는 말은 눈이 눈을 보지 못한다는 그런 '본다, 못본다'의 관점, 맥락에서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눈이 눈을 본다'로 -> 연기법이 꿰뚫어지고 삼법인이 체득되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현존이 됩니다.

'눈은 눈을 볼 수 없다'로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현존이 드러나면서 연기법이 꿰뚫어지고 삼법인이 체득됩니다.

그래서 전혀 다른 맥락이고 다른 노선인 두 문장이 가리키는 곳은 같은 곳이 됩니다.

'눈이 눈을 볼 수 없다' 즉 본성은 고정관념이 아니라 실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