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1. 눈은 눈을 볼 수 없다
눈은 물건(사물)을 봄으로써 눈이다. 그러나 그 눈은 눈 자신의 근본에서 본질적으로 不見이다. 만일 눈이 눈 자신을 본다면, 눈은 다른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즉 눈은 눈이 아닌 것이 된다. 따라서 눈이 눈인 것은 본질적으로 불견이기 때문이다
눈의 유는 눈이 아니기 때문에 눈이다.
즉 불견이 견의 성립이다.
불은 불을 태우지 않는다. 라는 말을 보자.
여기에서 불이 불을 태우지 않는다는 사실은 불의 자기 동일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불을 객체로 볼 때 나타나는 실체로서의 불의 자기 동일성이 아니다.
그것은 불 자체의 근본에 서 있는, 불 자신의 자기 동일성이다.
불이란 불을 태울 수 없다는 의미에서는 불의 본질 존재에 관한 언급이다.
그러나 그 말은 '지금 불이 타고 있다. '거기에 지금 불이 있다'는 언급이기도 하다.
지금 불이 있으며 활활 타고 있지만, 불은 자신을 태우지 않는다. 그러할 때 그 불은 불 자신이며 불 자신으로서 있다. 그러므로 불이 불을 태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의 본질존재와 현실존재는 하나이다.
연소하는 에너지에서는 불의 '실체'가 인정된다. 반면 자신을 태우지 않음으로써 연소하고 있다는 모습은 불 '자체'를 직시한 말이다.
즉 자신을 태우지 않는다는 말은, 불이 그 자체적인 존재방식의 근본에 있어서 단순한 실체가 아니며, 나아가서 불 자체는 '실체'라는 개념으로 표현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이다.
연소하고 있는 사태에만 주목하고 거기에서 현재 불이 타오르고 있다는 자기 동일성을 인정하는 그러한 견지가 실체적 입장에서 본 자기 동일성이다.
반면 불은 불을 태우지 않는다는 불의 자체성은 그러한 자기 동일성의 전적인 부정을 포함하고 있다.
연소의 힘과 작용 속에 불의 자연적 본성(physis)이 있고 불교적으로 말해서 불의 자성(自性)이 있다고 한다면, 불 자체는 소위 무자성(無自性)에 있다.
불은 연소이면서 비연소인 것이다.
불의 진실한 자기동일은 연소에 있어서 실체적 자성적인 자기동일에서 성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기동일의 절대부정인 비연소 위에서만 성립한다.
'이것은 불이다'라고 말하는 그 불이 진실한 불의 모습은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불이 아니다'라고 할때가 도리어 진실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장(공, 관조의 영역)에서 비로소 이것은 불이다라는 판단도 진실하게 성립한다.
즉 공의 장에서 비로서 유(눈, 보는 것)는 있는 그대로 절대유(눈, 눈이 있다)이고 동시에 절대무(눈이 아니다. 눈은 눈을 볼수 없다)이다.
곧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다.
이성의 장에서 파악된 사물 전체의 존재론적인 구조연관은 그것에 관한 주체의 사유내용과 필연으로 관계되어 지각된다.
그러므로 이성의 입장은 어떤 사물이 '무엇인가'라는 사유과정을 통하여 그 사물이 '있다'(현실 존재)로 다가가는 입장이다.
이성이 보는 실체(substance)란 보통 그 사물의 본질, 사물이 그 자체로 있는 자기동일성이다.
그것은 사물 자체가 우리에게 스스로 나타내는 그만큼의 형상만을 가리킨다.
이성의 입장에서는 사물의 자기동일은 존재논리의 범주로서 논리적으로 포착되거나 논리적으로 포착될 수 있는 것으로서 포착된다.
눈은 눈을 보지못한다. 불은 불을 태우지 않는다. 라는 것은 주관에 투영된 모습이 아닌
즉 주체에 대상으로 입각하는 장이 아닌 존재방식, 진실로 자체적인 존재방식이란 어떠한 것인가.
즉, 어떤 사물이 참으로 그 자신의 근본에 있고 그 자신의 근본에서 그 자체로서의 자기동일을 보전하고 있는가 하는 그 존재방식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는 보통 이성의 입장에 서서 사물을 판단하고 사물을 보고 있다.
거기에서는 우리가 사물의 리얼리티에 접근할 수 없다.
우리가 그 리얼리티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은 이성으로서의 판단이나 접근이 끊긴 곳(관조영역).
이성을 절대적으로 넘어선 장에서이다.
즉 사물 자체의 장, 사물의 자기동일의 장에서 그것은 스스로 현현하는 방식으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