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5. 초발심
구름이 많아 흐린 서쪽 하늘에
해가 넘어가는지 노란 석양빛이 장엄하더니
어두워진다.
...... 어두워진다. 라고 쓰여진 글을 그대가 지금 보고 있다.
잠시 그 풍경을 상상도 해보고 또는 전혀 읽혀지지 않는 그저 글자만 보았을수도 있고
글을 읽는 순간 그 풍경 속에 풍덩 빠질수도 있다.
여하튼 이렇게 '그대가 지금 보고 있다'라고 할 때
'그대가 지금 보고 있다'라고 하는 순간
자동으로 분리하는 지금까지 오래동안 해온 습관적 오류에 빠진다.
보는 자
보는 행위
보아서 경험된 내용이라는 분리다.
그러면 여기서 아주 잠시 잘 들여다보자.
보고 그래서 느끼고 경험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정말 그렇게 분리된 것인가?
그러한 모든것을 보고 알고있는 그것은 실재로 누구인가?
즉 보는자 따로, 보는 행위 따로, 보여진 것 따로라는 지금까지의 너무나 당연시했던 경계를 투명하게 깊게 잘 들여다봐라
그대는 스스로 보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들여다보면 진정으로 찾아보면 그 보는자는 보이지않는다.
결코 볼수없다.
만일 그대가 보고 있음을 느끼고 아는데요 라고 한다면
그 느끼고 아는 자를 느끼고 아는자는 누구인가?
그 느끼고 아는자를 느낀다면 또 그것을 느끼고 아는 자는 누구인가?
끝이 없을것 같은가?
아니...... 진심으로 전면적으로 몇단계까지만
소급해보라.
길게 끝없이 되어지지가 않는다.
볼수록 드러나는 것은 이 세계다.
온통 대상이다.
그것은
바로
보여지는 것은, 알수 있는 것은 모든 대상은 온 우주가
바로 진정으로 보는 자, 아는 자 자체이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
생각으로 글을 따라가지 마라.
아직 보는자와 보이는 것이라는 분리의 구조속에 그대가 있는것이 지금 그대의 현존이라면
섣불리 고개를 끄덕거리지말자.
보는자와 보이는 것이라는 분리의 눈으로 보기를 고집(너무도 익숙해서)한다면 다시한번 되짚어보자.
그대의 생각, 느낌, 감정, ...... 모두 그대가 볼수있고 감지할수 있고 알수 있지않은가
그러면 그런 생각, 느낌, 감정,......들은 진정한 주체가 이미 아니라는 것까지는
적어도 관념으로는 쉽게 도달할것이다.
그러면 이제 실재로 그대자신이
그 오랜습관이 지금 이자리에서 무너질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질만큼
뼈저리게 어찌할수 없게 그러함을
사무쳐야한다.
실감해야한다.
깊게 존재로 이해해야한다.
지금 바로
그것이 주시자다.
편의상 진정한 주체라는 의미에서 주시자라는 이름표를 붙인것 뿐
주시자에 걸리지마라.
또는 순수의식이라고도 한다.
태풍의 한가운데.
참나, 진아, 나-나 그 이름이 무엇이든
그 모든 행위와 경험과 존재 그 자체를
가장 최후에 보는 자이다.
그 주시자가 아무것도 보지않고 그 자신속에 그저 있음이 공이다.
그러면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주시자가 주시되어진 모든 것 속에 녹아버리는 것이다.
더이상 보는자와 보이는 것의 주객분리가 존재하지 않음이다.
그리하여 스스로 스스로가 무엇인지를 알아버리는 아니 스스로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현시
그리하여 자각의 불, 반야는 영원히 켜진다.
그 뒤 벌어지고 체득되는 깨달음의 효과들은
여기서는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