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3. 있는 그대로라는 것에 대하여
사물 또는 자기가 자기 자신의 근본에 있다 할때의 자기자체는 자기의 앎과 하나가 된 본질적인 알지못함(不知)이 있다.
만일 자기 자체가 자기 자체를 안다면, 자기는 어떤 사물을 안다는 앎의 작용을 갖지 못한다. (마치 만일 공의 장이 유라고 한다면 스피노자적인 유일의 실체만이 있게 되며, 세계와 만물은 사라져 버리는 경우와 같다.)
눈은 물건(사물)을 봄으로써 눈이다. 그러나 그 눈은 눈 자신의 근본에서 본질적으로 不見이다. 만일 눈이 눈 자신을 본다면, 눈은 다른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즉 눈은 눈이 아닌 것이 된다. 따라서 눈이 눈인 것은 본질적으로 불견이기 때문이다. .
눈의 유는 눈이 아니기 때문에 눈이다.
즉 불견이 견의 가능성이다.
즉 통상적인 의식의 입장에서 밖을 보는
바로 나라는 필터링이 사라지면
일체가 無化가 된다. (뒤집힘)
그런데 여기에서의 無는 아직도 '아무것도 없다'는 것으로서의
존재밖의 대상으로서의 흔적을 남긴다.
그리하여 그 無마저도 다시 부정되어진 자리(또한번의 뒤집힘)
공을 공인 사물로서 표상한다는 입장마저 공하다고 여기는 장에 들어설때에
'있는 그대로'라는 말이 성립된다.
'도무지 알수없는'에서 성립하는 자각..... 그 자각은 無知의 知이다.
자기라는 필터링으로 굴절한 모습으로서가 아닌 절대적으로 정면을 향한 위치에서만 성립하는 앎이고 자각이다.
이러한 자각은 공의 장에서만, 공이 자기와 하나된 입장에 서있을때만 성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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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에 대한 상대적인 무(상대무)마저도 부정된 허무의 극한에서 - 大疑現前이 벌어진다.
진실로 자기 자체이며 사물이 사물자체로 현성하는 리얼리티의 리얼라이제이션이다.
무지의 지는 공의 장에서 이러한 자체적인 유의 리얼라이제이션(현성 즉 회득)으로서만 성립한다.
비로서 있는 그대로의 나 자체로서의 또는 사물 자체로서의 유가 드러난다.
유가 유일수 있는 자리. 그것은 공의 장으로의 전환이 아니되고서는 불가능하다.
절대 차안이며 동시에 절대 피안인 '즉'의 장
사사물물이 참으로 리얼한 여실상을 가지고 현성하는 장에서
유는 절대유이며 동시에 절대무이다.
그 이외의 장 즉 이성과 감정의 의식의 장[존재의 장(유)]이나 그 근저인 허무의 장(상대무)에서는 자기와 사물은 언제나 反省的이며 자기를 포착하면서 자기에게 포착되며, 동시에 사물을 포착하면서 사물에 포착된다. 즉 상대유이고 상대무이다.
공의 장에 서있을 때 우리와 사물 자체는 인격적, 의식적, 육체적, 물리적 자기라고 불리우는 모든 존재방식을 벗어나 있다. 거기에서 有는 이미 자기라고 불릴 수 없는 존재방식이며 자기는 '자기가 아닌'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존재방식은 인격적, 의식적, 육체적, 물리적 '자기'의 존재방식과 하나인 유, 하나인 위치를 이룬다. 즉 일상의 자신, 또는 사물로서의 자신이고 사물이다.
그러므로 이것이 아니다와 이것이다의 양면이 하나인 자기동일성이 자기 자체이다.
자기가 아니면서 자기이다라는 말은 인간으로서의 자기의 有, 또는 자기의 주체 존재가 본질적으로 假現임을 뜻한다. 또한 우리에 의해서 일어나는 심신의 여러 현상, 혹은 자기가 자기를 알며 객체를 안다는 反省知도 본질적으로 가현이며, 소위 虛妄分別이다.
어떠한 객관적인 진실이라 해도(과학적인식조차도) 그 진실 그대로 본질적으로 가현이다.
그러나 역으로 말하면 공의 장에서 그들이 공과 하나로 있음으로써 그들이 본질적으로 現實在이다. 眞如 또는 如如라 표현되는 자리. 모든 일체가 자신의 본원성으로 돌아간 자리이다.
한자루의 주장자를 내밀며
이것을 주장자라고 부르면 틀린다. 그렇다고 주장자라 부르지 않으면 사실과 다르다. 그렇다면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라고 할 때
그 주장자는 감각적 사물도 아니지만 감각적 사물이 아닌것도 아니다.
주장자는 어디까지나 주장자임과 동시에 주장자가 아니다.
그 주장자가 진정한 주장자이려면 동시에 거기에 자기의 解脫이 내재해 있어야 한다.
그러할 때 주장자라는 사실이 본원적인 사실성으로 현성한다.
감각과 물질과 일상적인 삶의 세계를 떠난 곳이 아니라, 일상적 삶의 세계가 본원적인 세계이다.
일체 사물 그 자신들의 본성으로 올올히 현현하는 바로 지금 여기가 있는 그대로이다.
소나무가 소나무이고
잣나무가 잣나무이고
그대가 그대이고
내가 나인
자타가 그 자체로 개별적으로 서있는 동시에 동일적인 장이다.
사물을 보는 방식에서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질 때
0도가 곧 360도이다.
달개비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