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2. 사고와 사고너머
우리는 늘 어떤 것에 대하여 말을 하거나 개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말과 개념은 사실 보이지 않는 전제가 늘 붙어있는 상대적인 것이다.
아무리 명료하게 보이는 말이나 개념도 그 모두가 적용의 범위에 있어서는 꼭 어느 한계가 있다. 말이나 개념은 언제나 어느 한 관점이다.
즉 모든 관점일수가 없다는 얘기이다.
때때로 모든 관점일 때의 말도 있긴 하다.
그런 말들은 언어라는 옷을 입고 있음에도 이미 그 옷으로부터 자유하다.
그러니 차치하고.....
예를 들어 실제 영토와 지도와의 관계를 놓고 볼 때 지도는 결코 영토가 아닌 것처럼.
그렇게 이 세계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지도제작자가 휘어진 지구표면을 평면지도의 연속으로서 커버하려는 것과 같은 문제에 직면한다.
실제의 자연계는 무한히 다양하고 복잡한 세계로서 거기에는 직선이나 완전한 정각형은 들어있지 않으며 사건이 정연한 순서대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데 어울려서 일어난다. 막막한 우주공간까지도 휘어져 있다.
그래서 실재에 대한 표현에.... 즉 말이나 개념은 실재에 유사한 표상밖에 기대할 수 없고 따라서 이론적 또는 추상적인 지식 즉 말과 개념은 필연적으로 한계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관념적 사고의 추상적 체계 - 말과 개념 -를 가지고는 이러한 실재의 세계를 완전히 기술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궂이 표현하려 할때 역설적 표현을 쓸수밖에 없다.
또한 전체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말도 개념도 옳지도 틀리지도 않게 된다.
한시에서 세시각도의 사이를 말함에 있어서 여섯시에서 아홉시의 각도는 서로 상반되는 말이 된다. 옳고 틀림이 아니라 다른각도일 뿐이다.
또한 같은 A에서 B사이의 각도를 말할지라도 평면일 때와 입체일 때는 또 달라진다.
말이나 개념에 있어서 그러한 관념적 지식의 한계나 상대성을 매순간 자각하는 일은
우리들 대부분이 지난하고 매우 간과하고 있는 일이다.
표상에 매여 늘 놓치고 있다는 말이다.
그것은 실재에 대한 우리의 표상이 실재 그 자체보다 훨씬 파악하기 쉽기 때문인데 인식을 시작하면서부터 생각으로 사물과 만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 개념들과 상징들을 실재 그 자체로 너무도 당연하게 혼동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표상이고 이미지화한 개념이고 상대적 지식일 뿐 결코 실재가 아니다.
실재의 꽃과 만나는 순간... 지금까지의 꽃이라는 모든 관념과 이미지가 떨어져나간
있는 그대로의 꽃. 그곳엔 그저 늘 처음인 만남. 봄만이 있다.
불교에서는 궁극적인 실재는 추론 즉, 드러낼 수 있는 지식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언어나 관념의 근원이 되는 감각이나 지성의 영역밖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말로써 적절하게 기술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실재는 철저히 체험으로부터 오는 절대지라고 부른다.
심리학적인 연구에서도 제시된바 있는데 윌리암 제임스의 말 가운데
우리가 이성적 의식이라고 부르는 통상적인 깨어있는 의식은 실상 의식의 한 특수한 형태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이것이 가장 얇은 스크린에 의해서 분리된, 그 건너 저편엔 전혀 다른 의식의 잠재형태가 가로누워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우리의 언어, 생각등의 이성적 의식은 우리의 전체의식의 빙산의 일각정도이다.
때때로 전체(실재)를 엿볼수 있는 체험을 경험하거나
늘 그러한 순간과 합일되어 삶 자체가 여여하게 흐르는 사람도 있다.
허나 대다수의 우리들은
그러한 체험조차도 다시 관념으로 해석하거나 이해하려고 하고
기어이 통상적인 일상이란 것의 그 기가막힌 허구의 관념(我想)에 가려져
매순간 순간 직면하는 기적같은 이 현실의 현재 순간의 실재를 놓치고 만다.
실재의 장은 지금 여기이다.
상대적이고 근사치에 머무는 분별하고 추상하고 분류하는 지성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는, 언어와 개념을 넘어선 자리.. 즉 사고는 물론 개아를 넘어 전체 자체의 지금 이 자리에
나라는 분별, 나라는 관점, 나라고 하는 있지도 않은 것을 스스로 만들어 실재를 왜곡해서 보게끔 내가 나를 가리고 있음을 알아차리는 것. (제법무아라는 것은 조금만 들여다보면 불자가 아니라도 생각으로도 닿을수 있는 자명한 이치라 본다. 생애 한두번씩은 허무의 극한과 만나보았을 것이라 가정하면...)
알아차리고 확연히 보고 그리고 되는 것.. 극단적으로 표현하면 그러한 이미 그러한 실재를 발견하는 그것이 수행이고 공부이고 삶이다.
깨달음, 진아, 참나, 공, 삼매,....... 이런 말이나 개념을 붙잡거나 찾거나 생각하거나 논하는 일은 엄밀히 말해서 내가 나에게 오롯이 닿기 전에는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진정한 중심이 되면 진정한 주변이 되고 또한 진정한 주변일 때 진정한 중심이다.
즉시 지금 여기이다.
모두가 오롯이 한번 피는 꽃한송이고 귀하지 않은 것이 없는 보석이고 불꽃이다.
풀이나 돌멩이나
삼라만상 모든 사물이
모두가 이 살아있는 우주라는 그물의 코 하나 하나이고 그 코 하나 하나는 다시 그 코가 중심인 그믈이고 우주이다.
숨쉬고 먹고 자고 말하고 이렇게 살고있는 우리라는 삶의 자리
절로 절로 청정화엄하는 지금 여기
그 지극한 충만함
달개비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