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1. 대적광

시원 넘어 무한하고 영원한 의 바다, 진여의 의식에서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이 무한한 대양에서 하나의 미세한 파문이 일어난다.

아주 미세한 이 작은 파문은 일단 자기 자신을 자각하면서 자신이 이 무한한 대양의 한낱 몸짓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렇게 해서 이 작은 파문은 자기의 존재가 무한으로부터 분리되고 외롭게 고립되어 홀로 서 있는 것같이 느끼기 시작한다.

대단히 희박한 상태의 이 작은 파문은 제아무리 작고 가냘프더라도 바로 자아성이라는 파도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 작은 파문은 이 시점에서는 여전히 대단히 미세한 것이며, 여전히 무한에 근접해 있으며 또한 희열에 차 있다.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진정으로 만족할 수도 없고 깊이 평안에 잠길 수도 없다. 참된 평안에 이르려면 작은 파문은 대양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작은 파문은 죽지 않으면 안 된다. 즉 분리된 자아감의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은 작은 파문에게는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자기가 원하는 모든 것은 오직 무한뿐이지만 그러나 그에 따르는 필연적인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작은 파문은 무한을 가로막는 방식으로 무한을 추구하게 된다. 작은 파문은 해탈을 원하면서 동시에 해탈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결국은 그 어떤 타협과 대체물을 설정하게 된다. 실질적인 신성을 발견하는 대신에 그는 자기 스스로를 신인 척,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고 영웅인 동시에 자족하며 영생한다고 자처하게 된다. 이것은 자기도취의 시작이요 생과 사의 싸움의 시작일 뿐만 아니라, 의식의 왜소화요 제한이기도 하다. 경계의 시작이고, 태초의 안과 밖이다. 왜냐하면 작은 파문은 더 이상 대양과 하나임을 잊고서 스스로가 대양이기를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한을 멀리하면서 무한을 추구하며 또한 대체된 만족을 강요하는 시도, 즉 자아화에 내밀려서 작은 파문은 점점 경색되고 보다 제한된 의식양태를 만들어 간다. 시원적인 상태가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함에 따라 점점 의식을 왜소하게 축소시켜 정묘적인 상태를 창출하기에 이른다. 마침내 정묘차원도 이상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되면 이번에는 심적인 상태로 의식을 더욱 왜소화시킨다. 여기서도 실패하게 되고, 생기적인 차원으로, 그런 다음에는 물질적인 차원으로 축소해 간다. 마침내 이 지점에서 신이 되려는 노력은(무한과 멀어지는 방식으로 무한을 갈구하던) 탈진상태에 이르게 되고, 결국 작은 파문은 생명 없는 수면상태로 떨어지고 만다.

이것이 한 생각, 한 마음 일어나서 한 우주가 창조되는 의식의 스팩트럼 발생과정이다.

진여의식이 스스로 작은 파문, 한 점이라는 비현현과 현현의 전이점에서 그 깊이가 다른 여러 대역의 의식으로 펼쳐지는 과정이다.

이 일자에서 다자로의 여행에서 각각의 다자는, 즉 고립된 자아의 유치한 연극의 배후에는 여전히 진정한 자아(진여의식)가 존재한다. 작은 파문의 각 의식대역은 진여의식의 펼쳐진 스팩트럼 중의 한 대역이기 때문이다. 자아의 욕망과 죽음이라는 이 모든 비극적인 연극은 신성한 놀이인 동시에 우주의 유희이며, '자아 망각'의 기쁨에 넘치게 된다. 작은 파문이 진정한 자아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러나 여전히 진정한 자아의 작은 파문임에 틀림없으며, 이 진정한 자아는 연극이 진행되는 내내 여전히 그대로 머물러 있다.

이렇게 해서 이 일자로부터 다자로의 운동 - 퇴화 - 은 진정한 진여의 입장에서 보면 바로 순수한 창조이며 빛이 넘치는 광휘이지만, 그러나 작은 파문 자아 입장에서 보면 고뇌라는 비극적인 이야기이고 불행의 서사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그렇게 펼쳐진 다자에서 일자로의 운동, 즉 진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진여로서 깨어나는 일이며, 따라서 억지로 자학극에 내몰리지 않고 창조의 영광을 유지하는 일이며,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오는 일이다.

진여의 의식에서 보면 진화와 퇴화의 과정은 수세기에 걸쳐서 스스로 유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순간마다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 즉, 이 순간순간마다 작은 파문(다자, 삼라만상, 개인)은 무한에서 새롭게 출발한다. 즉 매순간이 빅뱅이다. 그러나 이 순간순간마다 작은 파문은 무한으로부터 스스로 오그라들어서 결국은 현재의 삶에 적응하는 수준으로 낙착된다.

무한의 진여의식은 그렇게 자신을 펼치는 동안에 무한인 본래의 자아도, 시원의식도, 정묘의식도 잊혀져 무의식상태로 돌아감과 동시에 지금도 전개되고 있는 최상의 정점을 향한 진화의 나선운동, 즉 무한의 진여의식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몸짓을 하고 있다.

일자에서 다자로의 퇴화(하강, 또는 펼침, 나툼, 창조..... 그 이름이 무엇이든)와 다자에서 일자로의 진화(상승, 돌아감, 회귀, 소멸, 깨달음...... )가 바로 이 순간 수천 수만 중중무진 그 모든 시작과 끝이, 그 모든 생과 사가, 한 우주의 창조와 소멸이 지금 여기 동시에 벌어지고 있음의 도가니, 대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