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04. 大疑現前

大疑現前

사유 또는 의심한다는 의식작용의 끝에서
'내가'라는 분별을 파괴하고 자기의 근저에서 나타난 것이 대의(大疑)이다.
그곳은 자기가 궁지에 다다른 곳이며 동시에 자기가 없어진 곳이며, 자기가 멸하는 곳이다.

그 현상은 마치 콩이 익어서 껍질과 종자로 분리되는 모습과 같다.
이 경우 껍질은 소자아이며, 콩알은 세계와 함께하는 무한성의 대(大)이다.
그 때 자기는 동시에 자기의 무(無)이다. 그래서 이 무가 대의 위에서 전환이 일어날 때 그 전환의 장소로 된다.
대의는 대의 자신으로부터 전환의 장으로서 무의 장소를 여는 것으로서 성립한다. 그러므로 대의(大疑)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대의(大疑)는 대사(大死)라고도 불린다.

허무나 의심의 극한에서 자기가 완전히 무가 될 때, 즉 내가 완전히 실존적으로 죽어없어질 때, 큰 삶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그러한 전환은 일반적인 허무주의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서양사상에서 보자면 니이체의 ''에 근접한 극단적인 허무주의(권력에의 의지)가 있는데 그보다 좀더 근접한 사상이라면 에크하르트의 부정신학(절대무의 신학)을 들수 있다.

有에서 허무(상대무)를 거쳐 (절대무)에 이르는 것.

즉 깨달음은 의심과 마찬가지로, 자기가 깨달음을 여는(開悟) 동시에 '자기가'라는 존재방식을 탈락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결국 자기와 더불어 일체사물의 근저로부터 그 자신이 '실제(reality)'로서 현전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실제'는 자기와 사물일체의 '실제'이며, 그것들의 여실한 현전과 다름없다.
그 '실제'는 대의를 돌려서 그 밑바닥에 나타나는 '실제'이다.

大死一番乾坤新라든지 '큰 죽음 밑에 큰 깨달음 있다.' 라는 경지가 그러한 자기 본래의 면목의 자리이다.
그것은 자기와 함께 사물 일체의 'Reality'의 'Realization'이다.

대의현전에 대해 궁금해하신 님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달개비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