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12. 그대여...... 솔직해져라 !
오늘은
종교, 경전, 교리, 사상의 칸막이는 훌쩍 뛰어넘자.
동서양의 철학사, 인류의 기원과 역사, 물리학, 생물학,...... 지식도 넘어서자.
이 모든것들을 이곳에서 거론하자면
책 몇권의 분량으로도 빠듯할것이다.
그러므로...
궁극의 가르침들은
절대무, 전체성, 사랑, 참나, 깨달음, 무위, 무념, 순수의식, 순리, 신성, 진리,
진여, 공, 일진법계, 비이원......
대강 이런단어로 귀결된다.
그런 궁극에 이르기 위한 길, 방편들 또한 훌쩍 뛰어넘자.
그 길 또한 대략
멈춤, 알아챔, 관, 사마디, 화두,
에고죽이기, 바라보기, 온전히 이해하기, 참회
죽고거듭나기, 헌신, 명상, 기도, 참선, 기타등등... 이름도 많지.
그런 모든 공부를
수행 또는 마음공부라 칭할때,
그런 수행이나 공부라는 것은
결론부터 말하면
또하나의 상이고 욕심이다.
결국엔 그 공부하려는 마음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
도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
지금 이곳이 아닌
무언가 그럴듯한 저곳을 찾는 마음
그 마음자리에서는 바로 그 마음에 가려서
그토록 구하고자 찾고자 하는 그것은 드러나지 않는다.
바로 찾고자 하는 그 마음에 가려서
바로 그 자리임을 보질 못하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모두 쉬게될 때
그런 갈구가 멈출 때
그런 모든 하고자 하는 것이 끊어진 자리에
그토록 구하던 그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공부하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다.
그렇게나 붙들고 있는 수행과 방편들이
왜 욕심인지
왜 또하나의 아상인지를
그러니 지금 자신이 하고있는
공부가, 노력이
참으로 부질없는 에고의 놀이라는것을
알기 위해서 하는 공부가
마음공부, 수행이라 하겠다.
그래서 마음공부는
지식을 쌓는 공부가 아니라
비워내는 공부이다.
버려라 버려라 하지만
버려지지 않는 그 욕심 집착들
아 그래 맞다.....라고
이해하면서
왜 지금 바로 이순간
여전히 무엇인가를 붙들고 있는가
여전히 자유롭지 않은가
참이해했다면
당장 놓아질 것이다.
당장 자유로운 상태가 될것이고
당장 해탈할 것이다.
결국 아직도 가슴에 움켜쥐고 있는 것들이
이성으로는 놓아야 할 것이라고 알고있지만
진정으로 놓을 것으로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부분의 내가 있다는 것이고
아직도 나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고
아직도 나라고 하는 것을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스스로 나라고 여기는 것들이 강력하게
[본래의 나]를 가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이성이라는 것, 관념이라는 것은
그렇게 자기모순을 드러낸다.
자신이 움켜쥐고 있는 그 모든것이
진정으로 버려도 아깝지 않은
한줌 먼지라는 것을,
어떤 사람의 표현을 빌리면
똥닦은 휴지라면,
또는 참으로 허망한 헛것이라는 것을
직접 뼈저리게 통감하면
버리지말라 버리지말라 해도
저절로 손에서 놓아버릴것을.
그렇게 도저히 놓을수 없다면
그런 자신에게 솔직해지자.
솔직해지자.
솔직해지자.
진실로 진실로 자신에게
솔직해지면......
진정으로 아직도 참으로 많은 것을
얻고자 가지고자 구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될 것이다.
교묘하게 합리화하고 정당화하고
착각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될것이다.
진정으로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면......
자아라는 관념놀이를, 에고의 장난을
발견할것이다.
그토록 붙들고 있는
그것이
재물이든 명예이든
사회적 지위, 명성, 권력,
타인으로부터의 인정, 애정,
죽음, 삶, 깨달음, 도인, .......기타 등등
하찮은 것이든
위대한 것이든
붙들고 있는 것은 같다.
그렇다면
버리려고 노력하지 말것이다.
그런노력은 이미 위선이고 분열이다.
차라리 죽기살기로 구할 일이다.
(우리가 욕심이라고 구분해 놓은것에
전존재를 던져, 목숨을 던져 구해보았는가?)
그 구하는 것이 가치없다고 스스로
절절히 깨달을때까지는.
현재 진정한 자신은
붙들고 있는 자기이지
다 놓고 비운 자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의 자신과
자신이 만든 또하나의 관념상의 자신과의 괴리로
원하는 자신으로 현재의 자신을 무시하고
괴롭히는 꼴인 것이다.
버릴 것이니 버려야 함이 옳은 것이라고,
또는 이런이런 모습이
책에서 말하는 좀더 깨달은 사람에 가까운 모습같으니까,
이러이러 하는 것이 훨씬 멋있어 보이니까
...... 기타 등등
현재 실재의 자신과
자기가 만든 기대하고 원하는 자신과의 분열은
또하나의 고통을 낳는다.
자신이 만든 허상에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수행이나 마음공부뿐만이 아니다.
삶의 여러고통 중의 많은 부분이
이런 내적 분열로 인한 경우일 때가 많다.
그렇게 자신에게 진정으로 솔직하고 또 솔직해져서
진정으로 그런 자신을 발견하고
그 온갖 욕심덩어리인 자신,
그 못난 자신,
그 잘난 자신,
그 모순덩어리인 자신,
참으로 어리석기도 하고
참으로 추하기도 하고
참으로 사랑스럽기도 한
자신을 보게되고
그러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할 때!!!
......
그 인정이라는 것 참으로 쉽지않다.
그러나 솔직해지자.
타인은 속일수있어도 자신은 안다.
그 모습이
그렇게 살고있는
또는 살려지고 있는 현재의 나인것이다.
그런 생각, 감정, 욕망, 행위들의 총체.
그 모든 것이 자신이지 않은가.
그러한 지금 현재의 자신을
더이상 저항하거나 방어하거나 꾸미거나 속이지 않고
진정으로 진정으로
인정할 때!!!
예기치못한 참으로
예기치못한 자유가 벌어진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자신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는 첫걸음!
그리하여
그 사랑하고 이해하는 그 장에 들어설 때
비로소 처음으로 오롯이 자신으로 있게 된다.
그러면
세상은 이해되어진다.
세상은 사랑이 된다.
자신이 세상이므로......
엄청난 비약이다.
아니면 당연한 결론이기도 하다.
아니 아주 쉬운 일이다.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일.
(관념으로 왜곡, 타협하고 정당화 합리화시킨것 바로보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그래서 보게 된 현재의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는 일.
(호불호, 판단, 분별, 선악의 기준.... 이런거 다 내려놓고 그대로 인정하기)
일단 이 두가지
어려운 일이려나
참으로 쉬운 일이려나
이성적이고 논리적일수록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힘든 법.
자신이 자신의 영혼을 다해서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왜.... 깨달음을 구하는가?
공부도 많이 했다는
도판도 다닐만큼 다녀봤다는
아직도 깨달음을 구하고
열심히 수행하고 있다는
버려지지 않는 자신의 욕망과 싸우는 것이 수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그대에게
달개비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