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5. 고(苦 - dukkha)
일체개고를 정확하게 안다, 또는 본다는 말은 쉽게 얘기해서 깨우쳤다는 말이다.
사실 진제의 눈에 드러난 무명과 마야(무명으로 벌어지는 우주)가 일체개고이다.
'고'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워낙 사람(무명의 깊이와 모양)에 따라
그 내용과 의미가 다양하고 또 대부분 부분적인 '고'인 경우가 많다.
공부하는 자로서 사실 '고'에 대한 견해와 이해, 그리고 붓다의 고집멸도의 사성제와
삼법인으로서의 일체개고는 참 중요한 어쩌면 이 공부의 핵심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총괄적이고 개괄적인 '고'에 대한 견해와 이해가 필요하다고 본다.
사성제의 고라고 할 때의 '고', 일체개고의 고라고 할 때의 '고'가
한문으로는 '苦', 우리말로는 고통, 괴로움이라고 번역되는 데
원어인 산스크리트어나 빠알리어로는 dukkha이다.
dukkha의 의미는 육체적인 고통이나 괴로움(pain - 아픔), 심리적인 고뇌, 괴로움, 불안(sufferring - 고통)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불만족성(unsatisfactoriness) - 존재자체의 고(달개비식 관점)까지 포함한다고 본다. 불교적 관점에서의 고 - dukkha는 특히 바로 '존재자체의 고'라는 존재의 실상 곧 깨달음(법)과 직결되는 하나의 진리라는 것이다.
초기경전에서 표현되는 '고 - dukkha'의 8고개념을 살펴보면
생(生), 로(老), 병(病), 사(死)
사랑하는 사람들(것들)과 헤어지는 고통(愛別離苦)
원하지 않는 사람들(것들)과 만나야 하는 고통 (怨憎會苦)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求不得苦),
오온을 취착하는 고통(略五蔭盛苦)
이렇게 8가지 '고'를 말한다.
여기서 7번째까지는 삶에서 누구나 쉽게 수시로 접하는 것들이어서 새삼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고
8번째의 오취온 자체가 고라는 이 부분이 사성제의 고성제와 삼법인의 일체개고의 '고'의 핵심이라 볼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나라는 존재를 구성하고 있으면서 찰라 찰라에 나고 멸하고를 거듭하고 있는 헤아릴수 없는 끊임없는 색수상행식(오온)을 나로 여겨 취착하는 그 자체 즉 오취온이 둑카(고)라는 말이다.
일전에 블로그에 반야심경의 '조견오온개공'이라는 글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산다는 것은 오온 - 몸짓, 마음짓 -의 끊임없는 취착이고 그러한 삶의 속성 그 자체가 고통이며 깨닫는다는 것은 바로 그러한 오온(색수상행식)을 조견해보니 취착할 것 없는 텅빈 공이더라는 말이다.
그래서 오온이 무상이고 무아임을 바르게 알아 오온속에서도 오온이 비었음을 꿰뚫어 앎을 반야지혜라 하는 것이요. 그러한 반야지로 무아가 체득된 현존이 불이의 비이원적 실재이고 사사무애법계인 것이다.
다시 돌아와서
8번째의 고라고 하는 오온의 취착(upaadaana)은 12연기에서 말하는 촉-수-애-취-유에서 바로 갈애(tan*haa)가 그 원인이다.
상응부등에서 말하는 둑카의 성질에 대한 사리불의 설명을 보자면
1.dukkhadukkhataa(苦苦性), 2.sankhaaradukkhataa(行苦性), 3.vipari.naamadukkhataa(壞苦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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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성은 생주이멸 중 생주에서 발생하는 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육체적, 정신적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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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고성은 생주이멸 중 이멸에서 발생하는 괴로움 즉 즐거움이든, 행복이든, 괴로움이든
시작한 것은 반드시 사라지므로 겪어야 하는 괴로움. -
행고성은 고고와 괴고를 발생시키는 것 자체가 바로 연기적 존재성이라는 맥락이다. 즉 존재하는 것은 그 어떤 존재도 상의상관의 관계성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하나의 조건적 존재라서 바로 존재한다는 그 자체가 그 특유의 조건위에서만 가능하고 그 조건이 바로 존재하는 고통이다. 즉 무상함에서 오는 고.
이 '고'의 세가지 속성을
느낌(vedanaa, 受)의 세가지,
즉 괴로운 느낌(苦受, dukkha vedanaa), 즐거운 느낌(樂受, sukha vedanaa),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不苦不樂受, adukkhamasukha vedanaa)이라는 주석이 있는데
여기서의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산다는 것이(존재한다는 것이) 매순간 끊임없는 접촉(경계)이고
그러한 접촉에서 맨처음 인식되는 것이 수 - 受 - 느낌이다.
즉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유지라는 작용에서 가장 일차적인 감각이자 인식인 것이다.
그 느낌은 크게 나눠보면 세가지 즉 즐겁거나 괴롭거나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이다.
그래서 느낌 자체는 즐겁던 괴롭던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던 아무 문제 없다.
문제는 우리가 이런 '느낌'에 어떻게 대응, 반응, 행동, 행위, 생각, 관념화 하는가에 있다.
즉 12연기에서 말하는 식 - 촉 - 수 다음의 고리인 바로 애(갈애)의 발생이다.
괴로운 느낌은 저항하고 혐오, 밀쳐냄, 부정하고 즐거운 느낌은 '더, 계속'이라고 갈망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 대해서는 무지해지고 간과하고 즐거움이나 괴로움의 이름표를 붙여버리거나 어색함을 모면하는 다른 꺼리로 다른 느낌으로 도망치거나 한다.
즉 그러한 느낌 그 자체로 있지 못하고 2차적인 또 3차적인 이름표붙이기, 관념화, 개념화, 집착, 갈애
등으로 애-취-유-생-노사우비고뇌로 전개되어 무명의 바퀴가 끊임없이 굴러가는 것이다.
느낌을 느낌 그대로 있는 그대로 여실지견하게 되면 고가 더이상 고가 이닌것이다.
느낌에 대한 즉 고와 락에 대한 반응, 분별, 취착을 쉬게 하는 것이 바로 삼매와 무관점적, 무선택적 깨어있는 알아차림, 주시, 사티라고 하는 각성이다.
괴로움이 올 때 괴로움이 되어라, 괴로움을 면밀히 깨어서 보라, 괴로움만 있고 괴로워하는자가 없다 등등의 말이다.
얘길 하자면 이거 한도 끝도 없게 길어지므로 오늘은 일단 여기서 생략하고.....
결론적으로 말해서 고성제, 그리하여 삼법인의 일체개고는
제행무상인 실제를 항상한 것으로 착각하고
제법무아인 실제를 내가 있다고 착각하므로 발생되는
즉 실제와 다른 현존(무명)일 때 그 어긋남에서 오는 근원적 불안감, 끼기긱거리는 소음 즉 둑카 -고 라는 말이다.
연기적인 현상의 생주이멸(성주괴공) 중 생주이멸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생과 주에 취착하고 이와 멸에 저항하고 부정하는 삶이라는 몸짓, 마음짓(오온취)이 '무명'이고 바로 무명이 '고'라는 말이다.
그래서 붓다는 '고'를 성스러운 진리로 표현한것 같다.
괴로움은 무명을 깨어나게 하는 진리의 진여의 실제와의 어긋남에서 표현되어지는 공의 속삭임이고
그대로 하여금 본래의 나를 왜 잊고서 자신의 일부에 함몰되어 모른척 하느냐는 '본래나'의, 진여의 손짓이다.
전체성이 스스로의 나툼에게 주는 또 하나의 나툼, 선물이 '고 - 두카'이다.